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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 자전거 횡단

한겨레신문
그것은 정말 유혹적이었고, 동시에 대단한 도발이었다. 과연 가능할까라는 막연한 두려움은 오히려 호기심을 자극했다. 3700m에서 5200m에 이르는 티벳 고원의 자전거 횡단! 생각만 해도 숨가쁜 호흡이 연상돼 질식할 것만 같은 극한의 도전. 대원을 모집하는 모사(謀事)꾼의 글은 더 매혹적이었다. 아마 참가한 대원들은 이 엄청난 `선전문구'에 마음이 쏠렸을게 분명하다. " 나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비밀스러운 거사를 자주 꾸미곤 했다. 황량한 자연에 나 자신을 내 팽개치는 것이었다. 당장 그 상황이 되면 살아 돌아와야 한다는 동물적인 본능을 발휘하곤 했다. 이런 苦行의 과정이 아프게 하지만 나를 高揚케 하였다. 나는 고통스런 실존을 통하여 자신의 본질을 발견하는 메조히즘에 빠져 있는지도 모른다. 고산등반, 산악자전거, 마라톤, 철인3종경기, 장거리자전거여행, 요트세일링 등 나의 이력서의 상당부분을 채우는 거친(?) 용어들이다. 한 때 나는 이런 고상하지 못한 취향에 대해 열등감이 많았다. 대학원에서 Tibetan Medicine을 전공할 정도로 Tibet는 나의 정신적인 이상향의 목록 중에 존재했다. 티베트 라싸의 포탈라궁에서 서쪽으로 네팔국경까지 橫斷하는 여정이다. 자전거를 타고 가면서 因緣이 되는 원주민들에 대해 <게릴라식 의료봉사>를 하면서 갈 작정이다. 나는 산악자전거로 94년과 99년 인도 히말리야 산맥이 있는 캐시미르지역 라다크 옛 왕국을 두 번이나 순례한 적이 있다. (중략) 나는 황량한 고원의 가슴 두근거리는 아름다움을 잊지 않고 있다. 힘들었지만 고통스런 기억보다는 아름다움에 대한 기억이 더 크다. 진정한 高(높음, 고양)는 苦(고통, 아픔)로써 접근할 수 있는 것 같다. 중국에 의해 유린된 상처받은 티벳, 그 곳에서 뿌리를 내리고 사는 사람과 자연을 위로하는 길이 되었으면 한다. 부디 더도 말고 샹그리라(理想鄕)를 꿈꾸는 한의사가 두세 명만 있었으면 좋겠다." 이 도발적 문구를 쓴 주인공은 이번 여행을 주도한 김규만(48.서울 불광동 굿모닝한의원 원장)씨다. 스스로를 `게으른 몽상가'라고 부르는 그는 동국대 산악부 출신이며, 산을 너무 좋아한 나머지 그의 대학원 전공이 8천m 이상 14좌가 뚝 버티고 있는 히말라야의 중심 티베트 의학( 고소증)이다. 사색과 상식과 과학으로 스스로를 무장시키며 늘 새로운 도전을 꿈꾸는 그를 곁에서 보면 `돈키호테'가 자연스레 연상된다. `자신의 건강은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는 건강한 상식을 주장하는 그는 올바른 자세가 모든 잔병들을 물리친다는 일념으로 몸살림 운동도 펴고 있다. 그는 일찌기 해외한의사의료봉사단(KOMSTA) 창단을 주도했고, 직접 해외의료봉사활동도 폈다. 위의 글은 그가 이번 티베트행에 함께할 동료의사들을 구하는 메세지를 이 단체의 홈페이지에 띄운 것이다. 하지만 추석명절을 끼고 열흘 이상 한국을 떠나 티베트 고원에서 자전거를 타면서 의료봉사활동을 할 의사가 과연 몇이나 될까? 이 일을 수행하려면 체력적으로 자전거를 잘 타야 했고, 정신적으로는 준비가 돼 있어야 했다. 물론 가족의 배려는 필수적이다. 정작 이 고행에 참가한 동료의사는 봉사단 부회장을 맡고 있는 김병수(46.순천 제중한의원 원장)씨 1명뿐이었다. 그는 몇년전 네팔 고산지대 의료활동을 편 경험이 있는 고산 유경험자였다. 그리고 그는 자전거 마니아가 아니었다. 티베트를 가보고 싶었고, 오지 원주민의 의료봉사에 대한 사명감이 그의 몸과 마음을 움직이게 했다. 그리고 정작 참가한 대원들의 대다수는 세계의 지붕에서 자전거 여행을 꿈꾸는 `간 큰' 모험가들이었다. 그들은 철인3종에 푹 빠진, 자신들의 인생 앞엔 마치 도전 밖에 없어보이는 듯한 사람들로 보였다. 그 중에서도 유일한 여성인 이경주(47.미8군 군종처)씨는 뒤늦게 마라톤에 입문해 첫 마라톤 완주를 4시간 초반에 하더니 다음부터 바로 3시간대를 뛰기 시작했고, 이젠 마라톤보다는 철인3종에 푹 빠진 고2의 외아들을 둔 어머니이자 주부, 직장여성이다. 이미 2003년 제주대회를 완주한 그는 산악자전거가 없어 이번 횡단엔 차량팀으로 합류해 식량지원 등 고생을 마다하지 않았다. 고2년생의 아들이 늘 이씨에게 "어머니에게 재미없는게 뭐가 있어요?"라고 할 정도로 매사에 의욕이 넘친다. 그는 평소 주중에도 1~2차례 야간산행을 하는가 하면, 점심시간엔 서둘러 수영장에서 운동을 하고, 도시락으로 점심식사를 해결한다. "매일 대부분 같은 사람들하고 점심식사를 하는데, 시간이 너무 아까워서"란다. 그래서 그는 화장도 하지 않고, 머리도 치장하지 않은 채 생머리를 질끈 동여매고 다닌다. 50대를 바라보는 그의 이런 행동에 많은 사람들의 잔소리가 그치질 않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는 `철녀'다. 상업전수학교를 다니며 당시 주산2단을 따내는가하면 검정고시로 고졸을 마치고, 방송통신대로 학사 학위를 받은 열성학구파이기도 하다. 부산 회계법인에서 일하다 미8군 공병단의 회계담당을 뽑는 채용시험에 응시해 영어면접과 시험을 통해 당당히 합격한 실력파다. 용산기지를 비롯해 미8군이 건설한 각종 빌딩 등 주요 공사의 회계는 거의 대부분 그의 손을 거쳐갔다고 봐도 좋을 정도다. 지금은 공병단의 감축계획에 따라 자리를 미8군 군종처(군인종교담당부서)로 옮겨 이곳에서도 역시 회계업무를 보고 있다. 티벳 횡단 4일째 5220m의 락파라 고개 정상까지 자전거 페달을 밟고 오른 3명중 한명인 서성준(42.문화일보 제작국)씨는 김규만씨의 표현대로 `40대의 파란만장한 철인'이란 표현이 어울릴지도 모른다. 평소 수영을 좋아하다 철인3종까지 빠지게 된 그는 운동을 너무 좋아한 나머지 산악자전거까지 구입하게 됐다. 구입한 뒤 처음 라이딩나가던 날 장흥에서 고수들을 따라 고생고생하며 쫓아다니다 결국 내리막길에서 넘어지면서 쇄골을 다쳐 2년이나 쉬었다. 이제 몸이 나아질만 하자, 철인3종의 서울중앙클럽 같은 회원인 김규만씨의 유혹에 순식간에 빠져들고 만다. 부상당했던 어깨의 쇄골이 나아지면서 근질근질한 몸을 또 어디에 혹사시켜야할지 단번에 고민이 해결되고 만 것이다.그의 시원스런 성격에 이런 도전을 마다할리 없다. 왜 철인3종을 하느냐고 묻자 "한번에 쉽게 되는게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도전하고 또 도전하고.... 그러니 이번 도전이야말고 그에겐 매력만점이 아니었을까? 막내로 참가한 김연수(29)씨는 철인중의 철인이다. 이미 그는 프랑스외인부대 출신으로 매스컴을 통해 널리 알려진 데다, 국내 철인대회 우승을 한 경력이 있다. 자신의 최고기록이 11시간 초반대. 수영(3.83km)과 사이클(180km), 마라톤(42.195km)을 이 기록에 끊으려면 얼마나 운동을 해야 하나? 그와 함께 있으면 우선 그의 근육질에 은근히 기가 죽는다. 울퉁불퉁한 다리를 보면, "와~! 저렇게 근육도 발달할 수가 있구나"고 생각할 정도다. 그래서 이번에 함께 한 남자 대원들은 "너무 발달한 근육들은 여자들이 좋아하질 않는다는데... 그렇지요? 누나!"라며 옆에 있는 이경주씨에게 동의를 구하기도 한다. 군산대 2년때 특전사 하사관으로 군에 입대한 그는 1년 정도 있다가 갑자기 시행한 간부사관 모집(99년 4기)에 합격해 6개월의 장교교육을 받고 소위로 임관해 특전사 장교생활까지 마쳤다. 5년간의 군 생활 퇴직금으로 600만원을 손에 쥔 그는 2002년 유럽 18개국 배낭여행을 떠나는데, 수중에 50만원 밖에 남지않자 프랑스 외인부대 사령부가 있는 프랑스 남부의 오바뉴라는 작은 도시를 찾는다. "돈 떨어지면 이곳에 가기로 마음 먹고, 여행을 떠났습니다." 그는 프랑스 외인부대에서 새로운 도전을 꿈꾸고 있었다. 한달간의 테스트를 통과한 그는 6개월간의 교육훈련을 마친 뒤 프랑스령 지중해 코르세섬에 있는 제2공수연대 2중대 산악전담팀에서 3년간 생활을 한 뒤 지난해 제대해 귀국했다. 아프리카 분쟁지역에 투입돼 특수작전까지 벌였던 그는 알프스산맥에서 3000m부터 최고 4900m의 고도에서 산악훈련까지 마쳤다. 300회가 넘는 스카이다이빙(군 강하 포함), 스쿠버다이빙, 산악스키, 인명구조를 포함한 산악클라이밍, 패러글라이딩, 산악자전거 등 못하는 스포츠가 없다. 또 태권도(3단) 검도(1단) 유도(1단) 경호무술(4단) 합기도(2단) 특공무술(2단) 등 무술은 종합 13단이나 된다. 그런 그에게 이번 횡단 계획이 누설된 것은 치명적이었다. 새로운 직업을 준비하는 마당에 은행돈을 꿔가며 경비를 마련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런 철인들의 도발을 흐뭇한 미소로 즐기려는 나이 지긋한 대원을 소개할 때가 됐다. 오인환(59). 한국 마라톤의 간판 스타 이봉주를 지도한 감독과 동명이인이다. 오인환 감독이 평지에서 빠른 선수를 키워냈다면, 이번에 소개하는 오인환씨는, 아니 오인환 대장은 세계 최고봉을 오른 한국의 산악인들을 배출해낸 원로 산악인이다. 히말라야 등반 경험이 있는 산악회인 히말리얀클럽의 창단 멤버이며, 초모랑마(에베레스트)를 비롯해 히말라야 고산의 등반대장을 여러차례 지냈다. 한국 최초로 티벳 탐험의 장을 열기 시작했고, 이미 60년대부터 티베트와 네팔 인도 시킴 부탄 등 오지와 고지 여행에 풍부한 노하우를 축적하고 있다. 그에겐 고소증에 관한 많은 일화를 전해들을 수 있고, 엄홍길 박영석 등 에베레스트를 등정한 쟁쟁한 산악인들에 대한 뒷얘기도 물론이다. "난 자전거는 잘 몰라요. 평생 히말라야에 인생을 받쳤으니까요? 젊었을 적 내 돈을 들여가며 히말라야와 인생을 바꿨다고나 할까요? 이번에는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에 간다는 것 때문에 동행을 하게 됐지요." 그는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행정과 식량 지원을 맡았고, 최연장자이면서도 몸을 아끼지 않으며 취사부터 호텔 예약 등 섭외까지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가 한말 중 가장 기억에 또렷이 남는 말이 있다. "고소엔 장사 없어요." 이번 도전은 산행이 아니라 자전거를 타는 것이다. 그것도 세계의 지붕에서. 한국 산악자전거의 `얼굴'이라고 해도 좋을 권영학(40.엠티비하우스 대표)씨가 빠질 리가 없다. 그는 한번도 예비모임에 참가하지 못할 정도로 바쁜 나날을 보내면서도, 추석 명절중 자신이 운영하는 가게가 딱 하루만 쉴 정도로 바쁜 업무속에서 직원 2명에게 모든 것을 떠넘기고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 "지금 안간다면 언제 갈 것인가" 그의 뇌리속에 끊임없이 남아있던 질문이었다. 그리곤 가장 마지막으로 티베트행을 결정했다. 취미가 직업이 된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 1991년부터 코렉스배 산악자전거대회 3연패, 92~93년 학산배 2년 연속 우승, 93년 SBS배 전국산악자전거 종합우승(다운힐 크로스컨트리 합산)을 달성하면서 엘리트 출신들을 따돌리고 명실상부한 국내 1인자로 군림했다. 1995년 일본에서 열린 제1회 아시아선수권을 자비로 출전해 2위에 오르면서 98애틀랜타 올림픽 출전권을 획득하고도, 정작 올림픽에는 엘리트선수 출신이 아니라는 이유로 참가하지 못한 아픔도 있다. 1991년부터 올림픽직전인 97년까지 7년간 국가대표를 지냈고, 국가대표 선수에서 물러난 97년부터 2001년까지 국가대표팀 코치, 2002년 부산아시아경기대회 산악자전거 운영위원, 2003~4년엔 주니어대표팀 코치를 지냈다. 그는 걸어다니는 산악자전거 비지니스맨이기도 하다. 그가 특허청에 등록한 상표만 4가지. 이중 이번 티벳 횡단에 가져온 오를레앙이라는 자전거는 그가 내놓은 상표다. 코리안 티투스(Korean Titus) 자전거도 그의 가게에 가면 구경할 수 있다. 94년부터 엠티비 하우스(MTB House)라는 이름으로 점포를 운영한 그는 최근엔 체인점 개설에도 주력해 자전거 문화 선도에 앞장서겠다는 야심을 갖고 있다. 그가 배출한 방배동의 아주머니 제자들만 800여명에 이른다고 할 정도로 그는 자전거교실을 통해 산악자전거 전도사 역할도 하고 있다. 14차례 백두산 자전거 투어를 실시하는 등 풍부한 자전거 투어경험을 살려 이번 도전에 가세했다. 그리고 뒤늦게 이들의 `은밀한 거사'를 알게 된 기자는 산악자전거 입문 3년차다. 미국 연수시절 3개주(노스캐롤라이나, 플로리다, 오하이오주)에서 횡단을 겸한 자전거 투어경험이 있고, 매년 5월 첫째주 일요일 하루동안 뉴욕 맨해튼에서 3만명이 참가하는 미국 최대의 자전거 이벤트 파이브보로 바이크뉴욕(Five Borough Bike Newyork)행사를 직접 참여한 뒤 `언제 한국에선 저런 멋진 행사가 열릴까' 한없이 부러워했던 적이 있다. 10월18일자 36.5도의 커버스토리에서는 동행취재만 한 것으로 썼지만, 이번 동행에서는 직접 자전거를 가져갔고, 김규만 서성준 권영학 김연수씨와 함께 5명의 자전거팀 대원이자 취재기자로서 라이딩에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