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인터넷한겨레 우리나라에서 큰스님으로 존경받는 여러 스님들 뿐 아니라 티벳의 정신지도자인 달라이라마와 남방불교에서 수행전통이 가장 잘 남아있는 미얀마의 고승 우빤디따 선사와 챤미에 선사 등을 직접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티벳인들로부터 ｀관세음보살의 화신＇으로 존경받는 달라이라마는 함께 간 일행 중 한명이 “살아있는 부처”라고 표현하자, “전 단순히 한 사람의 승려일 뿐이고, 우리는 똑같은 사람이며 똑같이 석가모니 부처님의 제자들”이라고 강조할만큼 겸허했다. 그는 또 “전통이 강한 한국 불교에서 많은 것을 배우기를 기대한다”고 ｀하심(下心)＇했다. 미얀마의 청정한 수행전통을 되살린 마하시 선사의 수제자인 우빤디따 선사 역시 겸허했다． 한국 선사들의 견성에 대해 그는 “만약 어떤 방법으로든지 도달했다면 도달한 것”이라고 말했다．비록 위빠사나와 수행법이 다르더라도 만약 한국의 선사들이 정말 깨달음을 얻었다면 그 깨달음을 존중한다는 의미였다． 그는 “화두를 드는 선불교를 통해 도과를 성취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에 “화두선을 해보지 않아서 화두선에 대해선 함부로 얘기할 수 없다”고 말했다． 우빤디따 선사는 “무엇이든 직접 맛을 봐야 그 맛을 알 수 있다”면서 “위빠사나에 대해서도 맛을 본 이후에 얘기하자”고 말했다． 현재 세계 불교는 한국과 일본을 중심으로 한 화두선과 미얀마, 라오스, 타이, 캄보디아, 인도 등의 위빠사나와 티벳 불교 등 세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 등 서구에선 달라이라마의 인기로 인해 티벳 불교를 따르는 사람이 가장 많다. 또 위빠사나도 티벳불교 못지않게 세계 곳곳에서 뿌리를 내리고 있다． 선불교의 경우 일본의 스즈끼 선사와 한국의 숭산 선사 등의 노력으로 서구에 알려지고 있지만 세계적으로는 선불교에 앞서 티벳불교와 위빠사나를 먼저 떠올리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이런 세계적 위상과는 달리 티벳불교나 위빠사나에 대한 한국 선사들의 평가는 혹평을 넘어선다．선불교 조사의 법맥을 이어 받았던 한 선사는 “위빠사나를 해서는 몇생을 해도 견성을 할까 말까한다”고 말했다. 그는 “직접 위빠사나 수행을 해보았느냐”는 물음에 “경을 통해 알 수 있다”며 위빠사나를 폄하했다． 그는 또 달라이라마에 대해서도 “그를 만난 적이 있는데, 그는 자비 보살정신을 펴는 포교사이지만, 선의 안목이나 대오견성의 안목을 갖춘 인물은 아니다”고 평가했다．위빠사나나 달라이라마에 대한 이런 평가를 그 선사에게서만 들은 것이 아니었다. 같은 질문에 대해 양쪽에선 전혀 다른 품격이 느껴졌다. 한국의 선사는 경을 통해 알 수 있다고 했지만, ＜대념처경＞에는 ｀중생의 정화를 위한, 슬픔을 건너기 위한, 괴로움의 소멸을 위한, 진리의 길을 걷기 위한, 열반의 중득을 위한 오직 한 길이 있다. 이 길이 몸, 감각, 마음, 법의 네 곳에 마음을 집중하는 사념처 위빠사나이다＇라고 돼 있다． 수행이란 깨달음으로 가기 위한 나룻배인 만큼 나룻배는 시간에 따라 그 성능이 바뀔 수도 있을 수 있을것이다．그러나 경에서만 그 수행의 근거를 찾는다면, 화두선은 위빠사나에 비해 논리가 빈약해지는 게 사실이다． 후세에 육조 혜능 대사의 설법도 ｀육조단경＇이라하여 경으로 높여 부르고 있지만 원래 경은 부처님의 설법만을 일컫는다． 따라서 만약 경대로만 엄중히 따진다면 위빠사나쪽에선 화두선에 대해 교조인 석가모니의 교설을 무시하고 중국 조사의 가르침만을 내세운다며 오히려 이단시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오히려 위빠사나 선사들은 남의 수행에 대해 함부로 말하지 않았다．그것은 수다원－수다함－아나함－아라한으로 이어지는 깨달음의 첫단계인 수다원에만 이르러도 다른 사람에 대해 나쁜 말을 하지않고, 다른 사람이 잘 되는 쪽으로 이끌어준다는 수행자의 품격을 언행으로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다． 또 우리나라 선사들이 일단 오도송을 읊고나면 제자들과 추종자들의 보호막과 법상의 권위 속에 갇히는 경우가 많은데 반해, 달라이라마는 세계의 종교 지도자들 뿐 아니라 과학자, 철학자 등에게 늘 문을 열어놓고 있다．세속적으로 본다면 매 순간 그는 깨달음을 검증받고 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달라이라마의 삶은 붓다의 가르침에 벗어나 있지않다. ４０여년 전 티벳 국민 600만명 가운데 120만명이 중국 군인들에 의해 살해됐기에 다람살라에선 주부들조차 부엌칼이라도 들고 싸워야 되지 않느냐는 사람들이 적지않다고 한다． 따라서 13만명의 망명 티벳인들이 세계 곳곳에서 중국대사관과 중국인들에 대해 테러라도 일삼는다면 이슬람 과격파 못지않게 상당한 분란의 씨앗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달라이라마는 “내가 갚은 차례일 때 참아야 윤회가 끊어진다”며 오히려 “중국인을 위해 자비심을 키워라”고 티벳인들을 달래며 이끌고 있다． 이처럼 개인의 경험으로 볼 때는 분노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인데도, 이에 동조해 중생놀음을 연장하는 것이 아니라 법의 감화로서 윤회를 그치도록 이끄는 이가 선지식이 아닐까． 이와 달리 우리나라에선 삶 속에 실천되는 예화를 남기기보다는 막행막식에 대한 일화를 남긴 `선지식\'들이 많다. ｀내＇가없이 무주상 보시를 했다는 얘기보다는 불같은 화로 남의 뺨을 내려치는 모습이 오히려 자랑스레 회자되기도 한다． 자신의 타고난 성정이나 탈을 벗고, 해탈되기보다는 더욱 강고한 탈을 쓰고, 그 탈의 꼴대로 행동하는 것이 마치 붓다행인양 우상화되고 있는 것이다． 붓다의 말과 행동은 누가들어도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러나 이렇게 비합리적인 언행이 이땅에선 정당성을 얻게 된 된 이유가 무엇일까．불법에 대한 정확한 이해의 결핍, 즉 정견을 갖지 못한 것이 힘이나 권위나 신비에 일방적으로 고개를 숙이는 풍토를 낳은 것은 아닐까. \'자신이 최고\' 이고 \'우리 스님만이 고승\' 이라는 아집과 편견 사이에서 실제 감동을 줄만한 선지식은 환상만을 쫓는 세상의 눈에 전혀 띄지않을 수 있다． 보이는 만큼만 보는 것이고, 영웅은 그 시대의 산물이기 때문이다．99명을 죽인 살인마에서 깨어나 길에서 맞아죽어가면서도 힘을 쓰지않은 채 아무런 원망이나 후회도 미움도 없이 평온하게 죽어간 앙굴리라마, 또 붓다의 가르침에 의해 천하제일의 신통조차 내려놓은 채 이교도에 맞아죽어가면서도 힘을 쓰지 않은 목갈리나, 차라리 인도의 독립을 포기할지언정 폭력을 써서는 안된다며 단식했던 간디, 적대감을 자비심으로 되돌리는 달라이라마． 전법가와 오도송을 앞세워 자신을 드러내는 쪽과 불법의 횃불로 자신의 탐심과 진심을 태워버린 이들 가운데 과연 어느쪽이 자신의 윤회를 끊고, 세상의 고통의 윤회를 끊어갈 선지식일까． 중생들이 스포츠 스타나 배우같은 \'선지식\'에 환호하는 틈새에서 말없이 수행정진하거나, 논밭을 일구거나 굶주리는 어린아이를 돌보면서 불법을 삶속에서 조용히 살려내는 그런 선지식을 만나고 싶다. 조연현 기자ch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