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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명 50년, 인도에 보내는 달라이 라마의 감사 인사|

화이트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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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고맙습니다
- 망명 50년, 인도에 보내는 달라이 라마의 감사 인사
 
2009년 04월 10일 (금) 09:02:39 달라이 라마 _ 향산 譯 nagapura@paran.com

 [이 글은 달라이 라마가 중국의 압정을 피해 설산을 넘어 인도로 망명한 지 50년을 맞아 인도 정부와 인도 국민들에게 한 ‘감사 연설문’ <The Dalai Lama's Tahnk You India Address on the Occasion of 50 Years in Exile> 전문을 옮긴 것이다. 연설문은 3월 31일 티베트 망명정부 인터넷 사이트인 www.Tibetcustom.com에 게재되었다. - 편집자 주]

형제·자매 여러분,

   
14대 달라이 라마
티베트는 성자들의 땅(the Land of Aryas)인 인도 북쪽 히말라야 산맥 너머에 자리 잡은 설국(雪國)입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이 땅에 축복을 주시고 이곳에서 불법(Buddhadharma)이 널리 퍼질 것이라고 예언을 하셨습니다. 티베트에는 카일라스(Kailash) 산과 마나사로바르(Manasarovar) 호수가 있는데, 이 두 곳은 모두 인도의 주요 종교 전통에서 성스럽게 여겼습니다.

인도를 지나 넓은 바다에 이르는 큰 강 네 개가 티베트에서 발원합니다. 지리적으로 티베트는 마치 인도고지(印度高地; Indian highlands)와 같아서, 인도의 위대한 스승들은 티베트를 33천으로 여기기도 하였습니다.

고고학 발굴 결과에 따르면 적어도 10,000년 전에는 티베트 인들이 이 땅에 들어왔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티베트 전통 종교인 본(Bon)교 경전 기록도 고고학 발굴 결과와 일치합니다. 벵갈 출신 학자인 쁘라즈냐 바르마(Prajna Varma)는 “마하바라타 전쟁(Mahabharata War)을 겪고 나서 신하들과 함께 티베트로 도망쳐왔던 남인도 왕국의 왕 루빠띠(Rupati)의 후손이 티베트 인들이다”라고 주장합니다.

사람들은 서기 전 150년 무렵에 자기 나라를 떠나 티베트로 망명한 마가다의 한 왕자가 티베트 왕이 되었던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티베트 사람들이 그 왕자를 냐티쩬뽀(Nya-tri Tsenpo)라 부르고 국왕으로 옹립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티베트 왕의 계보가 시작되었습니다. 티베트의 지리·인종 계통이나 왕조 역사를 고려해볼 때 인도와 티베트는 오랜 동안 서로 밀접한 관계를 맺어왔습니다.

7세기와 8세기에는 티베트 학생들이 인도로 가서 공부를 하였습니다. 퇸미 삼보타(Thonmi Sambhota)와 같은 젊은 티베트 인들이 인도에서 학업을 마치고 난 뒤에 나가리(Nagari) 문자에 바탕 하여 티베트 문자를 만들었습니다. 이 새 문자는 그보다 앞서 쓰였던 티베트 문자 기록 방식과 산스크리트어에 바탕을 두었던 티베트 문법을 개선시켜 주었습니다. 이것은 티베트 문명 발달에 기여하였을 뿐만 아니라 티베트에서 불법이 전파될 수 있게 하였습니다.

8세기에는 벵갈 왕자 출신으로 스님이 되었던 나란다(Nalanda) 대학의 저명한 학자 샨따락시따(Shantarakshita)가 티베트에 와서 계단(戒壇)을 세웠습니다. 밀교(Tantric Buddhism)가 전파되는 데에는 인도 서부 출신인 빠드마삼바바(Padmasambhava)의 역할이 컸으며, 샨따락시따(Shantarakshita)의 제자인 까말라씰라(Kamalashila)도 티베트를 방문해 불교를 가르쳤습니다.

방대한 삼장(三藏)을 이루는 삼승(三乘)과 밀교의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엄청난 가르침을 티베트어로 옮긴 티베트 불교의 확립은 위와 같은 인도 출신 스승들의 호의에 힘입은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나란다 대학 출신의 위대한 스승이었던 나가르주나(Nagarjuna; 龍樹)와 아상가(Asanga; 無着) 등의 위대한 인도 주석가들이 남긴 숱한 저작물도 티베트어로 번역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번역 작업 덕분에, 탁실라(Taxila)·나란다·비끄라마씰라(Vikramashila)와 오단따뿌리(Odantapuri)에 있는 인도의 여러 대학에서 꽃피웠던 순수한 불교 전통이 티베트에 확고히 자리를 잡게 되었습니다.

또한 티베트 학자들이 계속해서 인도의 원전을 언급하면서도 자신들의 생각과 개념으로 그 원전을 더럽히지 않았기 때문에, 티베트 인들은 오늘날 인도에서는 쇠퇴한 인도 불교 전통을 완벽하고 순수하게 보존할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서기 7세기의 번역가인 퇸미 삼보타(Thonmi Sambhota) 같은 티베트 학자들이 <관세음보살의 21밀교경전(twenty-one tantras of Avalokiteshvara)> ․ <寶星陀羅尼經(the Dharani of the Crown of Precious Collection)> ․ <10만송 반야경(the Hundred Thousand Verse Perfection of Wisdom Sutra)>같은 숱한 텍스트를 번역하였습니다. 부뙨 린첸둡(Buton Rinchen Drub, 1290-1364)이 쓴 『부뙨 불교사(the History of the Rise of the Dharma)』에 따르면, 8세기의 3대 역경가인 까와 뻴쩩(Kawa Peltseg) ․ 초도 루이 겔쩬Chogro Lui Gyaltsen)․ 샹 예세데(Shang Ye she sDe)에서부터 14세기 역경가 렉뻬 로도(Legpa'i Lodro)에 이르기까지 티베트 역경가 192명이 인도 삼장을 티베트어로 옮기고 인도 출신 스승 93명이 내용을 꼼꼼하게 살핀 뒤 확인해주었습니다. 티베트 불교 역사상 총 700명의 역경가가 있었습니다

8세기 말~ 9세기 초의 성자 샨따락시따(Acharya Shantarakshita)와 수렌드라보디(Surrendrabodhi) 시대부터 17세기에 성자 벨바드라(Acharya Belbhadra)와 그의 제자들이 산스크리트어 등 다른 나라 말로 된 불교 전적 300여 권을 티베트어로 옮겼는데, 이 중 10권만이 중국어(漢語)에서 옮긴 것이고 나머지는 인도 서적을 번역한 것입니다. 산스크리트어 등 인도 고대 언어로 쓴 숱한 책들이 티베트어로 옮겨졌는데, 이것이 현재 티베트 삼장의 깐귤(Kangyur; 佛說部 - 부처님 말씀을 번역한 것)과 뗀귤(Tengyur; 論疏部 - 부처님 이후 인도 스승들의 주석을 옮긴 것)을 이루고 있습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듯이, 오늘날 인도에서 쇠퇴한 인도 불교를 완벽하고 순수하게 보전하고 있는 것은 우리 티베트 인들입니다. 인도 말로 이루어진 전적은 티베트어 번역으로 가장 많이 남아 있으며 티베트어 번역은 매우 정확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이런 일은 산스크리트어 체계를 좇아 만든 티베트 문자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오로지 불법을 가르치기 위해 고지대를 여행하는 숱한 어려움을 무릅쓰고 티베트를 찾아왔던 수많은 인도 출신 스승들 중에서 가장 저명한 인물로는 현자(Pandit) 사꺄스리(Shakyashree)·현자 스르리뜨즈냐나(Smritijanana)와 디빰까라 아띠샤(Dipamkara Atisha)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시절에 불교를 공부하러 인도로 유학했던 티베트 사람들도 수천 명에 이릅니다.

인도 유학생들의 다수는 학업을 마친 뒤 티베트로 돌아왔지만, 일부는 인도에 남았습니다. 역경가 쨔미 상게닥(Tsami Sangye Drak)처럼 학문적 성취가 뛰어나 명성을 날린 티베트 학자들도 있는데, 쨔미 상게닥은 나중에 보드가야(Bodhgaya) 대사원의 주지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인도의 불교 사원들이 이슬람 침입으로 폐사될 때 티베트로 탈출해온 인도 스승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이런 사례들은 종교와 문화 영역에서 티베트인들과 인도인들을 연결해온 강한 인연이 있었던 사실을 반영하는 것이 확실합니다. 이미 고인이 되신 모랄지 데사이(1896 ~ 1995) 전 인도수상은 내게 보낸 편지에서 “인도와 티베트는 같은 보리수에서 나온 두 개의 가지와 같습니다”고 하였습니다. 나는 이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는데, 이것이 바로 내가 온 마음을 다 기울여 ‘인도인들은 우리 티베트인들의 스승이고, 우리 티베트인들은 그 스승에게 배우는 학생’이라고 말하는 이유입니다.

인도에서 불교가 쇠퇴하면서 인도와 티베트 사이의 영적·문화적 인연 고리와 사회적 상호 관계 또한 쇠퇴하였습니다.  하지만 중국이 티베트를 강점하던 1959년까지는 여권이나 비자도 필요 없이 티베트인들은 계속해서 인도에 있는 불교 성지 순례에 나섰고 인도 쪽에서도 티베트의 카이라스(Kailash) 산과 마나사로바르(Manasarovar) 호수를 찾았습니다. 서쪽으로는 라닥(Ladakh)에서부터 동쪽으로는 오늘날의 아루나찰 쁘라데쉬(Arunachal Pradesh)에 이르는 국경을 따라 두 나라 사이의 교역이 계속 이루어졌습니다. 티베트는 국경을 접하고 있는 인도의 여러 왕국과 중요한 현안 문제에 관해 협정을 맺었습니다. 종교적 목적에서 국경 지대에 있는 성지에 선물을 보내는 전통도 있었습니다. 20세기에는 위대한 현인(Mahapandita)이었던 라훌 상끄리띠아얀(Rahul Sankrityayan; 1893-1963)이 세 차례나 티베트를 방문해 수많은 희귀본 산스크리트 텍스트를 복원하였는데, 이 작업은 인도에서 불교에 대한 관심을 회복하는 데에 크게 기여하였습니다.

정치적으로는 1904년에 티베트가 영국령 인도와 협정을 맺었습니다. 1910년에는 제 13대 달라이 라마께서 인도로 망명을 떠났습니다. 1913~1914년에는 영국령 인도와 티베트 사이에 심라 조약(Simla treaty)*이 조인되었고, 이 조약에 따라 인도와 티베트 양측은 10년마다 이 조약의 협약 사항을 재검토하기로 합의하였습니다. 티베트와 인도 사이에 교역로 상의 안전을 담보하기 위한 조정 절차가 마련되었습니다. 우편 서비스와 전신 선로가 개설되었고, 티베트 수도인 라사(Lhasa)에는 인도 공관이 개설되었습니다. 인도가 완전 독립을 얻기 몇 달 전인 1947년 3월에는 인도에서 열리는 ‘아시아 관계 회의’(Asian Relations Conference: 초대 인도 수상 네루(Jawaharlal Nehru)의 초청으로 인도 델리에서 열린 아시아 독립운동 지도자 회의 - 역자 주)에 티베트 정부 대표단이 초청을 받았습니다.

1956년에는 빤첸 린뽀체(Panchen Rinpoche)와 내가 부처님 열반 2500주년 축전(Buddha Jayanti Celebrations)에 초대받아 다른 티베트 스님(lama)들과 함께 독립국 인도를 방문해 행사에 동참하기도 하였습니다. 인도에서는 성지 순례를 가는 티베트 사람들에게 경비의 반액만 부담시키는 친절을 베풀어주었습니다. 내 자신이 인도에 있는 불교와 비(非) 불교 성지 여러 곳을 순례하는 기회를 가졌을 뿐 아니라 인도의 산업 발전을 목격하기도 하였고, 이때 신선한 감동을 가슴 가득 담아가기도 하였습니다. 인도의 여러 저명한 지도자들을 만나 그들에게 조언을 듣는 기회 또한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당시 수상이었던 현인(Pandit) 네루가 전해준 사랑에 넘치는 안내·지도가 티베트 사람들에게는 오래도록 많은 득(得)이 되었습니다.

1956년 바로 그해, 나는 인도에서 망명처를 구하는 대신 티베트로 돌아가기로 결정하였습니다. 돌이켜보면 이 결정은 세속적 및 영적 관점에서 둘 다 올바르게 이루어진 것이었습니다. 마지막 게셰(Geshe: 티베트 불교에서 승려들에게 시험을 거쳐 부여되는 세속의 박사 학위에 해당하는 자격 - 역자 주) 시험을 치르는 등 내게 주어진 영적 의무를 마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중국 당국자들과 협상을 하면서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다 쓸 수도 있었습니다.

“‘17개항 합의’**에 기초하여 티베트인과 중국인들이 함께 평화적으로 살아 왔다”는 사실을 분명히 하기 위해 티베트 정부와 내가 엄청난 노력을 했지만, 중국인들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티베트인들에게는 결국 중국의 야만적 행위에 반대하여 1959년 3월 10일 평화적으로 봉기하는 것 말고는 아무런 대안이 없었고 따라서 상황은 점점 심각해졌습니다. 나는 상황을 진정시키고 중국 측의 거친 반응을 바꾸어 보려고 갖은 노력을 다했지만 실패하였습니다.

그 결과 일부 껠뢴(Kalons: 티베트의 각료에 해당)이 포함된 소규모의 티베트 정부 관료들과 함께 나는 3월 17일 남(南) 티베트로 탈출하였습니다. 그곳에서 중국 당국과 거듭 접촉을 시도하였습니다. 그러나 중국군이 극단적인 폭력을 썼던 3월 19일 밤에 라사의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고 무고한 티베트인 2천 명이 죽고 부상당하고 24시간이 넘도록 투옥되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에 저항할 아무런 힘도 없었고 따라서 인도로 도망을 치는 것 말고는 다른 선택이 없었습니다. 여러 날 동안 천신만고 끝에 마침내 3월 31일에 우리 일행은 인도에 안전하게 도착해 ‘자유의 빛’을 보았습니다. 내 인생에서 가장 의미 깊은 날 중의 하나인 이 날(1959년 3월 31일)은 티베트인들의 역사에서도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중국 군대가 티베트 사람들을 거칠고 잔인하게 억압하고 그래서 티베트 전역에 소용돌이가 치자, 그 해에 티베트 사람 약 10만 명이 고국을 떠나 NEFA(Northeast Frontier Agency; [인도] 동북지구 변경 사무소)·오늘날의 아루나찰 프라데쉬(Arunachal Pradesh)와 부탄 왕국을 통해 인도에서 피난처를 구했습니다. 인도 정부는 넓은 마음으로 티베트 난민을 받아들였고, 곧 바로 아쌈(Assam)의 미사마리(Misamari)와 벵갈의 두아르(Duar)에 티베트 난민촌을 세워주었습니다. 인도 정부가 먹을거리·입을 거리·담요와 의료 설비 등을 제공하며 보여준 너그러움은 티베트 난민들에게 아주 큰 위안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얼마 흐르지 않아 비구·비구니들이 학업을 재개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고, 어린아이들에게도 교육 기회를 주었으며 어른들에게는 살 집과 적절한 일자리를 제공해 주었습니다. 간단히 말해 인도 정부가 티베트 사람들에게 물질적으로 필요한 것들을 해결해준 덕분에, 우리가 전력을 다해 티베트 고유의 종교·문화 그리고 무엇보다도 티베트의 정체성을 보전할 수 있었습니다.

티베트 난민들이 이곳 저곳으로 흩어지지 않고 공동체를 이루어 함께 살면서 자체 농장을 개발하고, 티베트 어린아이들을 위해 따로 학교를 세워 티베트 언어·문화와 종교를 가르치는 한편으로 현대 교육을 실시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현인(Pandit) 네루 수상의 선견지명과 개인적 관심 덕분이었습니다. 지난 50년 동안 10만 명이 넘는 티베트 난민들이 인도 국민들과 비슷한 사회적 혜택을 받았고 이제 티베트 난민은 세 번째 세대를 맞고 있습니다. 인도 자체에서 해결해야 할 숱한 문제들이 있었을 터인데도 온 정성을 기울여 지속적으로 우리 티베트인들을 지지하고 도와준 인도 중앙 정부 및 여러 주 정부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인도 국민들이 한결같이 우리 티베트 사람들에게 보여준 우정과 연민에 힘입어 우리들은 인도를 제2의 고향으로 느끼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이곳에서 티베트 인들은 기술과 능력만 있으면 어디에서든 그것을 쓸 수 있었습니다. 인도 전역에서 우리 티베트 사람들에게 아주 큰 도덕적·물질적 지원을 아끼지 않고 주었습니다.

지난 50년을 돌이켜보니, 우리가 인도에서 피난처를 구한 것은 올바른 선택이었다고 확신하게 됩니다. 어느 카스트에 속했든, 종교적·정치적 성향이 어떠했든 가리지 않고 매우 다양한 인도 국민들이 ‘인도-티베트 우의회(Indo-Tibet Friendship Society; ITFS)’·‘바랏-티베트 사뉵만쉬(Bharat-Tibet Sahyok Manch)’와 ‘티베트 친구들(Friends of Tibet)’ 같은 티베트 지원 단체를 만들었습니다.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인도인들이 개인적으로 티베트 난민들에게 큰 연민을 보여주었고, 티베트 문제 해결과 망명 티베트인들의 복지 향상을 위해 활발한 활동을 펼쳤습니다. 이는 자기 제자에게 특별한 관심을 보여주는 인도의 독특한 구루(guru; 스승) 전통을 보여줍니다. 인도에서 유래한 티베트의 정체성과 문명이 절멸될 수도 있는 심각한 위협을 맞이한 운명의 갈림길에서 인도 정부와 국민이 티베트인들에게 도덕적·물질적으로 보여준 아량은 “필요할 때 도움이 되는 친구가 진짜 친구”라는 영어 속담을 떠올리게 합니다.

인도와 티베트의 언어·관습과 사회 풍습 사이에 차이가 많다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티베트인들이 인도에 머무는 것이 불안과 걱정을 일으킬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두 국민 사이에는 대체적으로 진심에서 우러나는 조화와 이해가 있습니다. 이 사실 또한 인도가 갖고 있는 아량·인내와 아힘사(ahimsa; 비폭력)라는 귀중한 전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인도에 거주하는 다른 난민 공동체의 숫자에 비하면 티베트 난민의 숫자는 작지만, 우리 티베트인들은 인도 정부와 인도 국민 양쪽에서 가장 후한 도움과 인정을 받았습니다.

인도 정부에서 제공해 준 작은 땅에 농사를 짓는 일 말고도, 소규모 사업을 하는 티베트인들은 겨울철 몇 달 동안 인도 전역의 도시를 돌며 모직물 등을 팔기도 합니다. 이 사업은 생계비를 버는 기회일 뿐만 아니라 티베트 사람들이 이 땅 인도 사람들과 상호 관계를 맺고 서로를 잘 이해하게 되는 기회이기도 합니다. 티베트 난민들이 대부분 개인적으로는 자급자족을 할 수 있게 되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우리들은 티베트 학교와 기타 티베트의 문화 관련 기관들을 유지하기 위해 인도 정부의 헌신적인 지원으로 큰 혜택을 보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도, 내가 현재 망명 중 자유를 만끽할 수 있는 것은 인도 덕분입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할 수 있고, 나는 이 가르침에 바탕 해서 인류의 지위 향상에 일정한 기여를 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내가 인도에서 누리고 있는 자유는 『유배된 자유(Freedom in Exile)』***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내 자서전에 진심으로 반영되었습니다.

인도를 영적 고향으로 여길 수 있다는 것이 내게는 큰 명예입니다. 나는 세계 어디를 가든 아힘사(비폭력)와 카루나(karuna; 연민)라는 인도인들의 기본 덕목을 장려하려고 노력해왔습니다.

여러분과 똑같은 인간으로서, 나는 행복한 삶에 꼭 필요한 따뜻한 마음씨와 같은 인간의 가치를 증진하는 것을 가장 중요한 책임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물론 내가 지고 있는 세 번째 책임은 티베트 문제인데, 이것은 내가 ‘달라이 라마’라는 칭호를 가진 티베트인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달라이 라마’라는 칭호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티베트 안과 밖의 티베트인들이 내게 보내는 신뢰 때문입니다. 티베트인들의 복리가 내 일상의 관심사이고, 나는 중국 공산 치하에서 수십 년 째 억압을 당하며 그런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티베트 사람들을 대신해서 자유롭게 말을 하는 사람에 불과하다고 여깁니다.

지난 50년 동안 나는 숱하게 많은 지도자들과 노동자 및 지식인들에게서 공적·개인적 사안에 관해 너그럽고 사랑이 넘치는 격려를 받았습니다. 이분들은 내게 신뢰와 우정을 보여주었고 아주 값진 조언을 해주었습니다. 나는 이 모든 것을 소중하게 간직할 것입니다. 고마움을 주신 분들을 지금 모두 거명할 수는 없지만, 이 자리에서 특별히 몇 분, 라자고빨라차리(C. Rajagopalachari)·라자지(Rajaji)·라젠드라 쁘라세드 박사(Dr Rajendra Prasad)·현인 자와하랄 네루(Pandit Jawaharlal Nehru)·현인 비노바 브하베(Acharya Vinobha Bhave)·자야쁘라까쉬 나라얀(Jayaprakash Narayan) 그리고 아짜리야 끄리빨라니(Acharya Kripalani)에게는 따로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2천 년이 넘는 세월 동안, 특별히 지난 50년 동안 인도가 티베트에게 전해준 지지와 도움은 이루 헤아릴 수 없습니다. 어떤 말을 한다고 해도 우리 티베트인들이 인도에 지고 있는 빚을 갚기에는 모자랍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나라에 망명하여 살게 된지 50년을 맞이하는 오늘, 내가 여러분들에게 입은 큰 은혜에 대해 인도 국민 여러분과 인도 정부에 깊은 감사를 전하고자 합니다.

불교는 1,500년 전 쯤에 인도에서 티베트로 전해졌습니다. 그 뒤 발상지(發祥地)인 인도에서는 불교가 쇠퇴하였지만, 티베트에서는 온전하게 보전하여 다른 민족[국민]들도 부처님 가르침을 배우는 혜택을 받도록 도와줄 수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우리 티베트인들은 인도가 우리에게 전해준 친절을 일부라도 갚을 수 있었다고 여깁니다.

인도 전역의 여러 불교 유산을 복원하는 데에 우리 티베트인들이 기여할 수 있다면 정말 행복할 것입니다. 이 ‘꿈’을 실현하기 위해, 현인 네루(Pandit Nehru)는 라닥에 ‘시킴 티베트학 연구소(Sikkim Research Institute of Tibetology)’를, 그리고 바라나시에는 ‘중앙 티베트 대학교(Central University of Tibetan Studies)’를 설립하였습니다. 이 기관들에서는 한때 인도 고대 언어로 존재했지만 이제는 사라져 버린 중요한 전적들을 티베트어 판본에서 산스크리트어와 같은 인도 언어로 번역하는 사업에 착수하였습니다. 이 의미 깊은 프로젝트는 매우 성공적이며 만족스런 결과를 거두었습니다. 우리가 이제까지 보전해온 풍부한 문화를 기꺼이 인도에 다시 복원하고자 하는 티베트인들의 마음을 표하는 뜻에서, 나는 여러분들에게 깐귤(Kangyur)과 뗀귤(Tengyur) 전질(全秩) 및 티베트어 전적에서 산스크리트어로 복원한 책 63권, 그리고 힌두어 등으로 번역된 150권을 인도에 전하기로 계획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티베트 안과 밖에 살고 있는 전체 티베트인들을 대신해서 인도 정부와 국민 여러분들에게 우리가 여러분께 품고 있는 깊은 감사의 뜻을 거듭 전하고 싶습니다.

여러분 고맙습니다!

동시에 티베트의 이웃인 부탄과 네팔은 똑같은 종교와 문화를 공유하고 오랫동안 우리와 긴밀한 관계를 맺어왔다는 사실을 상기하고자 합니다. 이 두 나라 또한 티베트 난민들에게 피난처를 제공해주었습니다. 이 두 나라 정부와 국민들에게도 고마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티베트인들이 현재 살고 있는 여러 다른 나라에도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온 생명의 행복을 기원 드리며.

2009년 3월 31일

달라이 라마

   *  심라 조약:

티베트와 중국 사이에 오랫동안 끌어온 전쟁을 피하기 위해 영국의 중재로 1913년 심라(Simla)에서 3자간 회의가 열렸으며 이 회의에서 세 나라는 동등한 지위로 만나서 협상을 했다.

심라 회의에서 자국 통치하 인도 북쪽 국경의 평화를 갈망하는 영국은 “중국이 티베트의 완전한 자치와 영토보존을 약속하는 조건으로 티베트에 대한 중국의 명목상 종주권에 동의”하라고 티베트를 설득했지만 중국은 심라 협정에 서약하기를 거부했다.

1914년 7월 티베트와 영국의 전권대사는 심라 협정에 가(假)조인하고 “중국이 그 협정에 동의했으면 갖게 되었을 어떠한 이점도 반대한다”는 공동 선언을 했다. 그러므로 티베트는 회의를 시작하기 전과 같은, ‘중국에 어떠한 의무도 없는 독립된 상태’로 남게 되었던 것이다. 심라 협정은 또한 티베트의 주권과 외교 협상 능력 그리고 독립적으로 다른 나라와 동등하게 조약을 체결할 수 있다는 점을 영국과 중국이 승인한 셈이었다.


   ** ‘17개 항 합의’:

1951년 5월23일 중국인민정부와 티베트 정부 사이에 체결된 ‘티베트의 평화적인 해방 방법에 관한 협의 17조’로 “① 티베트 인민은 단결하여 제국주의 세력을 티베트에서 몰아낸다 ② 티베트 지방정부는 인민해방군이 군량 및 기타 일용품을 구입하고 수송하는 것에 협조해야 한다와 ③ 티베트 인민은 민족구역자치를 실행할 권리를 갖는다 ④ 중앙은 티베트의 현행 정치제도를 변경하지 않는다” 등의 17개 항이 담겨 있다. 


   ***  『유배된 자유』:

심재룡의 번역으로 2003년 정신세계사에서 『달라이 라마 자서전: 유배된 자유를 넘어서』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Dear Brothers and Sisters,

Tibet is the snowy-land located beyond the Himalayan ranges to the north of India- the Land of Aryas. Buddha Shakyamuni blessed this land and prophesied the spread of the Buddhadharma there. Mount Kailash and Lake Manasrovar are located there, both of which are considered sacred by India's major religious traditions. Tibet is the source of the four great rivers that flow into India and finally reach the great oceans. Geographically, it is like the Indian highlands, which many great Indian masters have referred to as the Heaven of Thirty-three, (Trayastrimshadeva). Regarding the date at which the Tibetan race first came about, archaeological findings suggest it was at least ten thousand years ago. The Bon scriptures concur. According to the Bengali scholar Prajna Varma, Tibetans are descendants of Rupati, king of a south Indian kingdom, who escaped to Tibet with his subjects after the Mahabharata War. As for the King of Tibet, it is believed that around 150 BCE, a prince of Magadha escaped to Tibet after being exiled from his kingdom. Tibetans named him Nya-tri Tsenpo and made him their king. Thus began the Tibetan royal lineage. Whether we consider our geography, ancestry, or our royal dynasty, India and Tibet have long had close ties with each other.



 

In the 7th and 8th centuries, Tibetan students were sent to India to study. on ce they had completed their education, these young Tibetans, such as Thonmi Sambhota, created a Tibetan alphabet on the basis of the Nagari script that improved on the Shangshung Maryig, an earlier Tibetan mode of writing, and a Tibetan grammar based on Sanskrit. This not on ly contributed to the development of Tibetan civilization, but also allowed for the dissemination of the Buddhadharma in Tibet. In the 8th century, Shantarakshita, a Bengali prince turned monk and illustrious scholar from Nalanda University, visited Tibet and founded the monastic order there. Guru Padmasambhava from the west of India was responsible for the spread of Tantric Buddhism. Shantarakshita's student Kamalashila also visited Tibet to uphold Buddhism.

It is through the kindness of these masters who established Buddhism in Tibet that numerous teachings of the Buddha such as those concerning the three vehicles and the four classes of tantra, which make up the content of the Three Baskets or Tripitaka, were translated into Tibetan. Besideds these, numerous works of the great Indian commentators, such as the seventeen Nalanda masters, Arya Nagarjuna and Arya Asanga among them, were also translated into Tibetan. This helped establish in Tibet the complete and pure tradition of Buddhism that had been fostered in the great Indian Universities at Taxila, Nalanda, Vikramashila, Odantapuri. Also, because Tibetan scholars constantly referred to the Indian sources and did not corrupt them with their own ideas and concepts, today it is Tibetans who have been able to preserve the complete and pure Indian Buddhist tradition, which declined in India.

To begin with, Tibetan scholars, such as the translator Thonmi Sambhota (7th century CE), translated many texts like the twenty-one tantras of Avalokiteshvara, the Dharani of the Crown of Precious Collection, and the Hundred Thousand Verse Perfection of Wisdom Sutra. According to the History of the Rise of the Dharma by Buton Rinchen Drub (1290-1364), from the time of the translator trio Kawa Peltseg, Chogro Lui Gyaltsen, Shang Yeshe De in the 8th century until the translator Legpa'i Lodro in the 14th century there were 192 Tibetan translators and 93 great Indian masters who supervised and approved their work. Altogether there have been about 700 translators.

From the era of Acharya Shantarakshita and Surrendrabodhi, that is the late 8th to early 9th centuries until Acharya Belbhadra and his disciples in the 17th century more than 300 volumes were translated into Tibetan from other languages , such as Sanskrit, of which on ly 10 volumes were translated from Chinese. Many volumes written in Indian languages such as Sanskrit were translated into Tibetan, which now comprise the Kangyur, the translated words of the Buddha and the Tengyur, the translated commentaries of subsequent Indian masters. Today, it is we Tibetans who preserve the complete and the pure Indian Buddhist tradition, which declined in India. Regarding the translation of texts from Indian languages, the greatest number is found in Tibetan and they are considered the most accurate, I think this is because the creation of the Tibetan written language followed a Sanskrit pattern.

Among the many Indian masters who visited Tibet, despite the difficulties of traveling at such high altitudes, in order to teach the Buddhadharma, some of the most celebrated figures are Pandit Shakyashree, Pandit Smritijanana and Dipamkara Atisha. There are also accounts of thousands of Tibetans visiting India in those days to study Buddhism. Many of them returned to Tibet after completing their studies, but some remained in India. There were cased of Tibetan scholars renowned for their scholarship like the translator Tsami Sangye Drak, who later became abbot of the monastery at Bodhgaya. There were also instances of Indian masters whoescaped to Tibet when their monasteries fell victim to the Turkic invasions.

These accounts reflect the indisputably strong ties that have linked Tibetans and Indians in the fields of religion and culture. In a letter to me, the late Morarji Desai stated, " India and Tibet are like two branches of the same Bodhi tree". I entirely agree, which is why I wholeheartedly describes Indians as our gurus, while we Tibetans are chelas or students.

Following the decline of Buddhism in India, spiritual and cultural ties and social interaction with Tibet declined too. However, Tibetans continued to go on pilgrimage to the sacred Buddhist sites in India and from the Indian side pilgrims continued to visit Mount Kailash and Lake Manasarovar freely, without a need for passports and visas, until 1959. Trade between the two countries continued along the border from Ladakh in the west to present day Arunachal Pradesh in the east. Tibet reached agreements on important issues with the kingdoms on its borders. There was also a tradition of sending donations for religious purposes to the sacred places in the border areas. In the twentieth century, Mahapandit Rahul Sankrityayan (1893-1963) visited Tibet three times and retrieved many rare Sanskrit texts, which have contributed greatly to the revival of interest in Buddhism in India.

Politically, in 1904, Tibet signed an agreement with British-India. In 1910, the 13th Dalai Lama fled into exile in India. In 1913/14, the Simla treaty was signed (between British India and Tibet), according to which the two sides agreed to review their agreements every ten years. Arrangements were made between Tibet and India to ensure security along their trade routes. Postal services and telegraph lines were established, and an Indian Mission was set up in Lhasa. In March 1947, a few months before India gained independence, representatives of the Tibetan government were invited to an Asian relations conference.

In 1956, Panchen Rinpoche and I, accompanied by other Tibetan lamas, visited independent India when we were invited to attend the 2500th Buddha Jayanti Celebrations. All the Tibetan pilgrims were kindly granted half-fare when they made pilgrimage to the holy Buddhist sites in India. I myself had the opportunity not on ly to make pilgrimage to many of the Buddhist and non-Buddhist sacred sites here, but also saw many industrial developments in India, which filled me with fresh inspiration. I also had the chance to meet and receive advice from many prominent Indian leaders. In particular, the then Prime Minister, Pandit Nehru's affectionate guidance was of far-reaching benefit to Tibetans.

That year, instead of seeking asylum in India, I decided to return to Tibet. Retrospectively, I am glad to see that this was the correct decision from both a temporal and spiritual point of view. Not on ly was I able to fulfil many of my spiritual obligations, such as sitting for my final Geshe (doctoral) examinations, but I also left no stone unturned in my efforts to deal with Chinese officials.

Although the local Tibetan government and I made great efforts to ensure that Tibetans and Chinese lived together peacefully on the basis of the Seventeen Point Agreement, they were in vain. The Tibetan people were left with no alternative but finally to launch a peaceful uprising on 10th March, 1959 to oppose Chinese brutality and the situation became much more serious. I tried my best to calm the situation and avert a harsh Chinese response, but failed. Consequently, accomplished by a small party of Tibetan government officials inclduing some Kalons (Cabinet Ministers), I fled to southern Tibet on 17th March. I tried on ce again to establish contacts with the Chinese authorities from there. However, the situation in Lhasa had worsened on the night of 19th March when Chinese troops resorted to extreme force and more than twenty thousand innocent Tibetans were killed, injured and imprisoned over a period of twenty-four hours. This left us helpless, with no option but to escape to India. Finally, on 31st March, after many days of hardship, we safely reached India and the light of freedom. As on e of the most significant days of my life, it also marked a turning point in the history of the Tibetan people.

Because of the Chinese military's harsh and relentless repression of the Tibetan people and the turmoil that spread throughout Tibet, that same year about on e hundred thousand Tibetans fled through NEFA, (present day Arunachal Pradesh) and Bhutan seeking refuge in India. The Indian government was so generous as to have immediately set up refugee camps for Tibetans at Misamari in Assam and Buxa Duar in Bengal. The generous way in which the Indian government bestowed aid in the form of food, clothing, blankets and medical facilties brought Tibetans tremendous relief. In due course, monks and nuns were provided opportunities to resume their spiritual studies, children were provided with education, the elderly were provided with homes and suitable employment was found for others. In short, because Tibetans' material needs were addressed, we were able to dedicate ourselves to preserving our religion, culture and our very Tibetan identity.

It was due to particularly to Pandit Nehru's farsightedness and personal concerns that we established Tibetan farming settlements, with the aim that Tibetans could live together in communities without being scattered here and there, and separate schools for Tibetan children where modern education could be given in addition to instruction in our own language, culture and religion. Over the last fifty years, more than on e hundred thousand Tibetan refugees have enjoyed social benefits similar to those of their Indian hosts and we have now reached the third generation. We are deeply grateful to the Indian Central and the State governments, who, despite having to deal with their own problems, have wholeheartedly and consistently supported and assisted Tibetans. The friendship and sympathy the Indian people as a whole have shown Tibetans has made us feel this is truly our second home, indeed, wherever Tibetans have had skills and abilities of their own we have been able to exercise them. Overall India has given us the greatest moral and material support. Looking back over the past fifty years, we feel confident that we made the right choice when we sought refuge in India.

Regardless of their own caste, religious or political affiliations, a wide variety of Indians have formed Tibetan support groups such as Indo-Tibet Friendship Society (ITFS), Bharat-Tibet Sahyok Manch and Friends of Tibet. Innumerable Indian individuals have shown great sympathy for Tibetans and have worked actively for the Tibetan cause and the welfare of Tibetans in exile. This reflects the unique Indian tradition of the guru showing concern for his chela. India's moral and material generosity to us during this critical period when our very identity and the civilization we derived from India is under severe threat of extinction truly reflects the English proverb which says, “A friend in need is a friend indeed.”

Considering the differences between Indian and Tibetan langauge, habits and social customs, our presence might initially have caused some unease and anxiety. However, in general a genuine hamony and understanding exists between us. This is a great source of strengthen and satisfaction. It is also a reflection of India's valuable tradition of tolerance and ahimsa. The number of Tibetan refugees is small compared to that of other refugee communities in India and yet we have received the most generous recognition and assistance from both the government and the people.

In addition to farming the small plots of land provided by the government of India, Tibetans fo petty business during the winter months selling woollen garments in the town and cities across India. This business is not on ly an opportunity to earn a livelyhood, but is also an opportunity for us to interact with the people of this country and improve our mutual understanding. Although Tibetab refugees have by and large become personally self-sufficient, we are still indebted to the government of India for its dedicated support of many of our Tibetan schools and other Tibetan cultural institutions.

On a personal level, the freedom I enjoy in exile I owe to India. I am able to practise Buddha Shakyamuni's teachings, on the basis of which I try to make some contribution to the betterment of humanity. The liberty I enjoy in India is truly reflected in the title of my autobiography – Freedom in Exile. It is a great honour for me to consider India my spiritual home and like a messanger I have tried to promote the key Indian principles of ahimsa (non-violence) and karuna (compassion) where ever I go.

As a human being my main commitment is in the promotion of human values such as warm-heartedness that are essential to a happy life. As a religious practitioner, my second commitment is the promotion of inter-religious harmony. My third commitment is of course the issue of Tibet, due on the on e hand to my being a Tibetan with the name of “Dalai Lama”, but more importantly due to the trust that Tibetans both inside and outside Tibet have placed in me. The welfare of Tibetans is my daily concern and I consider myself on ly as someone free to speak on behalf of those Tibetans oppressed by years of Chinese communist rule, who do not enjoy such freedom.

Over the last fifty years, I have received generous, affectionate and personal encouragement on official and personal matters from numerous leaders as well as social workers and intellectuals. They have shown me trust and friendship and offered me valuable advice that I will always cherish. I am ubable to name all of them now, but if I may mention just a few, they include C. Rajagopalachari (Rajaji), Dr Rajendra Prasad, Pandit Jawaharlal Nehru, Acharya Vinobha Bhave, Jayaprakash Narayan and Acharya Kripalani.

The support and assistance India has given Tibet for more than two thousand years, but particularly over the last fifty years is incalculable. Words are insufficient to repay the debt own we owe India. However, on this occasion of the fiftieth year of our living in exile in this country, to show how greatly indebted I feel, let me express my deep gratitude to the people of India and their government through you, my Indian friends who are personally here with us today.

Buddhism spread to Tibet from India around fifteen hundred years ago. Although it then declined in land of its birth, we were able to preserve it in Tibet as well as helping others benefit from the teachings of the Buddha. We feel we have gone some way towards repaying India's kindness.

We shall be very happy if we are able to contribute to restoring India's rich Buddhist heritage. In order to fulfil this dream, Pandit Nehru established the Sikkim Research Institute of Tibetology, Central Institute of Buddhist Studies, Leh, Ladakh, and the Central University of Tibetan Studies in Varanasi. In these places, initiatives have been taken to translate important texts, whose originals on ce existed in Indian languages but have since been lost, from Tibetan back into Indian languages such as Sanskrit. This significant project has been both successful and satisfying. As a token of Tibetan people's willingness to restore to India the rich culture we have preserved so far,I would like to tell you that we plan to offer the Indian nation, complete sets of the Kangyur (Tibetan translations of the Buddha's teachings), and Tengyur (Tibetan translations of commentaries by subsequent Indian masters), as well as 63 titles restored from Tibetans into Sanskrit and over 150 translated into Hindi and other languages.

On behalf of all Tibetans, both those inside and those outside Tibet, I fervently wish to express our profound gratitude by saying “Thank You ” over and over again to you, the people and government of India.

At the same time, I would like to recall that our neighbours Bhutan and Nepal share the same religion and culture and have long had close ties with us. Both of these countries have also provided shelter to Tibetan refugees. We are grateful to the people and the governments of these two countries too. Indeed, we also would like to express our gratitude to all the other countries in which Tibetans now live.

With my prayers for the happiness of all beings.

Dalai Lama
31st March,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