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부터 티벳에 어느정도 종교의 자유가 허락되면서 몇 군데 절이 복원되어 다시 문을 열고 있었다. 스님들의 수가 증가하고 있지만 신도들의 보시로 사는 것이 아니라, 중국 정부에 고용되어 월급을 받으며 절에 근무하는 직업인이다. 그러므로 출가하고 싶어하는 많은 티벳사람들은 다 받아주는 것은 물론 아니다.
따시룬포의 6백여 스님들 대부분은 동쪽으로 20㎞ 떨어진 국영 농장에서 일하며 가축들을 돌본다고 한다.
절 안에서 우리를 일일이 감시하며 사진을 찍지 말라고 소리를 지르는 등 거친 언행으로 불쾌감을 주던 스님들이 있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티벳사람들은 그들을 ‘쏘와’ 즉 간첩이라고 하는데 승복을 입고 근무하는 감독관들이었다.
훗날 인도와 네팔의 수많은 티벳 절들을 돌아 다니면서 절집 예절도 모르고 불자도 아닌 외국인들이 어떤 무례를 행하더라도 모욕을 주며 꾸짖거나 화를 내는 스님들을 본 적이 없다.
지위가 높은 스님이나 린포체일수록 겸손하고 자타국인 가릴 것 없이 절에 온 재가자들에게 매우 친절하고 봉사적이다.
오후에 ‘장’은 우리를 시장으로 데려갔다. 문화혁명은 불교뿐만 아니라 티벳의 모든 전통과 민속을 금지하고 유목민들에게 합리적인 물물교환도 금지했다. 생긴 지 얼마 되지 않고 아직은 다들 배급이나 국영 상점에 의지하는지 시장은 썰렁했다. 살아있는 전통과 문화, 그곳 사람들의 생활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그런 시장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러나 골동품과 공예품, 고물들을 뒤섞어 파는 좌판들은 볼 만했다.
호텔로 돌아가는 길에 웬 남녀 한쌍이 자전거를 타고 우리를 향해 달려왔다. 스위스에서 온 젊은 의사와 간호원인데 시가체에서만 2년째 봉사활동 중이라고 했다. 이마가 반듯한 의사와 아무리 일을 해도 지칠 것 같지 않은 건강한 간호원은 검게 그을린데다 기름기라곤 없는 거친 피부였지만 몹시 맑고 신선했다. 동양인도 아니면서 거기 있던 다른 서양인들과도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3월 항쟁으로 라싸에 군사 계엄령을 내리면서 중국은 티벳안의 자기들은 다행히 남을 수 있었다고 했다. 그런 상황에 우리가 왔다는 소식이 놀랍고 반가와 만나러 오는것이라고 했다. 우리는 여러 가지를 물어보고 싶었지만 그들은 정치적․종교적인 어떤 의견도 말하고 싶지 않고 목적은 오로지 의료사업이라고 했다. 티벳에 그런 서양인들이 살고 있다는 것이 내겐 새로웠다.

호텔 식당으로 가려는 장의 의사를 묵살하고 중국식당이 아닌 티벳식당에 가서 ‘모모’라는 티벳식 만두와 ‘창’이라는 술을 마셨다. 양고기만 듬성듬성 썰어 넣고 빚은 ‘모모’는 냄새가 역했다. 보리로 만든다는 ‘창’은 빛깔도 뿌옇고 맛도 막걸리랑 비슷했다. 흥분한 티벳 주인은 잔을 비우기도 전에 자꾸자꾸 채워 따라주며 ‘창’값은 안받겠다고 했다.
그날의 일정이 끝나자 피로를 참고 있던 일행은 대부분 자러 갔지만 루카스, 레이슬리, 마리온 등 젊은 축은 ‘어떻게 해서 온 티벳인데․․․․․․. 이런식으로 시가체를 떠날 수 없다’면서 다시 시내로 나갔다.

‘장’은 대학을 갓 졸업한 앳된 청년으로 안내인이기도 하지만 감시원이고 선전원이었다. 그러나 사람들이 장이 하는 영어를 못알아 듣겠다고 노상 짜증이고 중국 선전을 하려고만 하면 무안을 주는 통에 주눅이 들어 감시원이나 선전원 노릇은 제대로 못했다.
서양 사람들 속에서 장과 나는 동양인이니 친밀감도 있을 것이고 장은 바깥 세상에 관해 묻고 싶은 것도 많은 나이련만, 동생을 대하듯 슬슬 구슬러도 그는 긴장된 사무적 태도를 풀지 않았다. 처음엔 몰랐는데 운전수가 늘 장을 감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피로를 참고 시내로 나갔지만 다니는 사람들도 별로 없이 쓸쓸했다. 밤에 문을 여는 유흥없소도 있을 리 없어 영화관에 들어가 보았다. 필름이 낡아 화면에 비가 오고 형편없이 잠이 오는 중국 영화를 보겠다고 티벳사람들은 극장을 꽉 메우고 있었으니 대중문화의 수준을 알만했다.

밤 10시가 넘었는데도 호텔로 돌아가는 길이 훤했다. 북경 시각에 맞추고 있어 밤이 되도록 해가 지지 않는 것이다. 중국은 티벳의 밤조차 빼앗아간 것이다. 물론 들도 빼았겼다.
대대로 보리를 심어먹던 티벳의 들판에 중국은 자국의 식량난 해결을 위해 겨울 밀을 심었다. 밀농사가 실패하면서 수십만의 티벳인이 굶어 죽었다. 중국이 티벳에 오고 나서 굶어 죽은 사람만 무려 340만에 이른다. 중국은 티벳인민을 가난과 질병에서 해방시켰다고 주장한다.
남녀 인구 3명중 1명이 승려였던 티벳은 봉건 지주제도에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지금처럼 굶어죽는 사람들은 없었다고 한다. 호텔 창밖으로 보이는 빼앗긴 밤 빼앗긴 들에도 보리는 이삭이 패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