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이른 오후에 암독초 호숫가에 다달았다. 카롤라 고개를 넘으면서부터 흐리기 시작한 날씨가 안개비를 뿌려서 바람은 없어도 으슬하게 추웠다. 호숫가가 소택초지로 이루어져 물가로 다가설 수 있는 낭만은 적었지만, 그 호숫가에서 티벳 관련 서적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티벳 특산의 ‘야크’를 처음으로 보았다.
우리나라 재래종 소보다 좀 작은 몸집에 들소처럼 길다랗게 뿔이 뻗쳤고 검은 털은 발목을 덮을만큼 길고 흰 점박이들도 있었다.
야크는 힘이 세고 인내심이 강하며 성품이 소처럼 유순하다. 진하고 풍부한 젖을 내고 연한 고기와 털과 가죽은 물론 똥조차도 고원의 초지에서는 매우 요긴한 연료가 된다.
야크는 다른 가축들이 견디지 못하는 고산지의 혹독한 추위를 견딜 수 있고 말이나 소가 갈 수 없는 거칠고 가파른 설산에서도 타고 다닐 수 있다. 짐도 나르고 밭도 갈며 먹이를 챙겨주지 않아도 눈과 얼음을 헤쳐 스스로 찾아 먹는다. 몽골 초원의 말처럼 야크는 티벳 고원의 보배이다. 단순한 가축이 아니라 험난한 자연을 극복하며 살아가는 티벳인들의 반려인 것이다. 야크를 몹시 사랑하는 티벳 사람들은 야크를 소재로 한 노래와 시와 속담과 민담을 수도 없이 만들었다.

암독초의 야크들이 목에 달고 있는 붉은색의 풍성한 술장식은 호숫가 초지의 녹색과 야크의 검은 털에 멋진 액센트를 주고 야크를 매우 우아한 동물처럼 돋보이게 했다.
야크를 치는 아이들은 한번도 빨아본 적이 없는 듯한 누더기를 입고 상기된 붉은 뺨과 그을린 얼굴에 거친 바람이 파놓은 주름들이 깊었다. 그러나 야크 젖을 마시는 탓인지 네팔이나 인도의 아이들처럼 발육불량은 아니었다.
이방인들에게 호기심이나 수줍음이 많은 것은 인도나 네팔의 오지 아이들과 다르지 않았다. 멀리서 우리를 보고 숨가쁘게 달려왔지만 부끄러워서 차마 가까이는 다가오지 못한다. 이런 사랑스런 아이들을 만나면 우리 이방인들은 소위 선진국이라는 곳에서 가져온 알량한 볼펜이나 사탕알이라도 주면서, 심지어는, 잔돈까지 주면서라도 이들과의 교감을 시도하고 셔터를 눌러대며 기분을 좀 내고 싶어지게 마련이다.

그러나 일찌감치 피땀 흘려 티벳을 밟은 지각있는 배낭족들이 펴낸 기행문이나 안내서는, 반복되다 보면 마침내 티벳 아이들을 거지로 만들 그런 행위를 하지 말기를 신신 당부하고 있다. 우리도 출발하기 전에 그 점을 화제로 삼은 적이 있었다. 실제로 관광객이 끊임없이 찾아드는 카투만두나 박타푸르의 사원 근처에 사는 아이들은 외국인만 보면 뛰어와서 일루피만 달라고 졸라대고 심지어는 혼자온 외국인이 여자일 경우 떼지어 둘러싸고 구걸이 아닌 협박을 하기도 한다. 옷에 때묻지 않을 만큼만 네팔을 경험하고 가고자 하는 이들일수록 더욱 달라붙는 ‘더러운’ 아이들은 불쾌와 곤욕의 대상이 아닐 수 없지만 사실은 우리가 그들을 그렇게 만드는 것이다. 우리 일행은 함부로 선물이나 팁 등을 주지 말기로 했었다. 다가가면 달아나는 그 아이들을 마리온과 함께 설렁설렁 따라가 보았다.
아이들은 네모난 티벳집 몇 채가 옹기종기 모여 있는 호숫가의 나지막한 언덕 마을에 살고 있었다. 마을로 들어서자 달아나는 대신 한 아이가 우리를 이끌고 저희 집인 듯, 어는 문 안으로 들어갔다. 다른 아이들도 우루루 들어와 문옆의 바닥에들 쪼그려 앉는다. 천장에 뚫은 들창을 비스듬히 들쳐놓았는데도 감자를 삶는 큰 솥에서 나는 김이 가득 차 실내는 어둑했다.

때에 절은 색동 앞치마의 아낙이 털가죽으로 싼 동그란 의자를 불가로 가져다 앉게 하더니 김이 오르는 버터차를 사기전에 가득 부어주고 새콤하게 말린 치즈며 캅세라는 딱딱한 밀가루 과자 등을 내온다. 좀 역하긴 했지만 야크 버터의 기름이 뜨는 찝질한 버터차를 두어잔 마시고 나니 추위에 굳어진 몸도 풀리고 속도 든든해졌다. 그들도 역시 달라이 라마 사진을 가지고 싶어했다. 이웃 사람들까지 마구 모여드는데 일행들이 기다릴 것 같아 오래 머물 수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