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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달라이 라마, 티베트 역사 처음 말하다

박물관
달라이 라마, 티베트 역사 처음 말하다
아시아 전문기자와 3년간의 대화록
공산당에 맞섰지만 마르크스주의 옹호
원래 이름은 ‘붓다 존재’뜻하는 퀸뒨
한겨레 한승동 기자
» 1954년 마오쩌둥 초청으로 중국을 방문했을 때 찍은 사진. 흑백사진에 채색을 했다. 마오 오른쪽이 달라이 라마. 왼쪽은 함께 간 펜첸 라마. 웅진지식하우스 제공
〈달라이 라마가 들려주는 티베트 이야기〉
토머스 레어드 지음·황정연 옮김/웅진지식하우스·1만8000원
 

‘티베트는 몽골의 원나라 때부터 의심의 여지없이 중국의 일부’라는 게 중국의 공식 입장이다. 중국의 주장을 좀더 알기 쉽게 우리 사정에 빗대어 얘기하면 이렇게 된다. 단지 논리를 전개하기 위한 가정이지만, 만일 미국 등 제3국이 일본을 점령하고 ‘우리 땅’임을 선포한다면, 한반도는 자동적으로 그 제3국 땅이 된다. 왜냐? 일본이 1910년부터 36년간 한반도를 지배했기 때문에. 티베트인들 처지에서 보면 중국의 주장은 이런 말도 안 되는 논리 위에 서 있다. 칭기즈 칸의 원나라가 13세기 한때 티베트를 점령했지만 그 뒤 티베트가 원이 아닌 한족 중국의 속국이 된 적도 없는데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냐는 게 티베트인 주장이다. 그렇게 따지면 프랑스·독일·영국이 다 이탈리아 땅이라고 우기는 것과 뭐가 다르냐는 얘기다. 베이징 올림픽 성화봉송 과정에서 빚어진 연쇄충돌의 뿌리는 깊다.

네팔 카트만두를 중심으로 아시아에서 30년 동안 기자로 일했다는 토머스 레어드의 500쪽이 넘는 두툼한 책 <달라이 라마가 들려주는 티베트 이야기>(웅진지식하우스)에 이런 대화 장면이 나온다.

“불교는 성취에 이르는 길이 있는 이상입니다. 마르크스주의는 성취에 이르는 길 따위는 없는 이상이고요.”

“당시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성취에 이르는 길이 있었습니다. 공산주의는 계급 없는 사회를 건설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사회주의를 통해 단계적으로 협동조합, 그 다음 인민공사, 그 다음 계급 없는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고 말입니다. 마르크스 사상이 전부 나쁘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모든 착취에 강력하게 대항해서 이윤 창출보다는 분배에 쓰는 것. 마르크스주의가 놓친 것은 자비심이었습니다. 전체론적인 관점이 결여되어 있었다는 것, 그게 실수였습니다. 보세요. 자본주의도 아무런 목표가 없지 않습니까. 이윤창출에만 급급할 뿐. 이윤! 이윤! 이윤! 돈만 된다면 결과를 상관하나요?”


» 〈달라이 라마가 들려주는 티베트 이야기〉
뒤집힌 듯한 느낌이 들겠지만, 이 대화에서 마르크스주의를 옹호하는 쪽이 달라이 라마다. 물론 그는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다. 그는 1950년 자신의 조국 티베트를 침공한 뒤 지금까지 지배해 온 중국 공산당에 맞섰다. 이 대화는 달라이 라마가 결코 간단찮은 인물임을 강하게 암시한다. 그에게 때로 공격적인 질문을 던지는 이 책의 지은이 레어드는 거친 반공주의자에 완고한 반마오쩌둥주의자다. 달라이 라마와의 긴 대화가 주조를 이루는 이 책은 1600년대 이후 달라이 라마들 가운데 티베트 역사와 개인사에 대해 공식적으로 언급한 첫 사례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지만, 대화 쌍방의 관점과 속내를 짐작해가며 읽는 재미도 있을 것 같다.

14대 달라이 라마가 1935년 7월6일 티베트 동북부 암도 주의 탁처라는 마을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을 때 얻은 본래 이름은 라모 된둡. 두 살 때 후계자로 지목됐고 다섯 살 때인 40년 2월 공식 즉위했을 때 받은 이름은 잠펠 아왕 롭상 예셰 텐신 갸쵸. 달라이 라마라는 말은 13세기 몽골이 티베트를 지배했을 때 등장했고 그 뒤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들이 영어로 얘기할 때 그 말을 썼으며 서방 매체를 통해 그 말이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그 때문에 티베트 사회에서도 요즘 달라이 라마로 부르는 사람들이 많아졌지만 원래 대다수 티베트인들은 텐신 갸쵸를 퀸뒨(쿤둔)이라고 부른다. 퀸뒨은 ‘존재’ 또는 ‘붓다의 존재’라는 뜻이라고 한다.


책은 97년부터 약 3년간 모두 18차례, 총 50시간 동안 다람살라의 거소에 있는 그를 찾아가 인터뷰한 내용을 6년간 정리한 것이 뼈대를 이룬다. 한승동 기자 sdhan@hani.co.kr

 

2008-05-09 <script language=javascript type=text/javascript> // </scrip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