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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극으로 세상 바꿔요" 인도 천민 출신 인형극 배우 람니와스

박물관
"인형극으로 세상 바꿔요" 인도 천민 출신 인형극 배우 람니와스 ↑인형극 주인공 '조킴차차'와 배우 람니와스 사막이 되어가고 있는 오지, 인도의 틸로니아에 어느날 한 청년이 맨발로 걸어왔다. 그는 맨발대학 설립자, 산지트 벙커 로이(Sanjit Bunker Roy)씨를 찾아가 말했다. "저는 천민이라 어떤 일도 할 수가 없습니다. 청소라도 좋으니 시켜만 주세요." 로이씨는 짧게 대답했다. "안 됩니다." 청년이 낙담해 돌아서는데, 벙커로이씨 다시 말했다. "청소가 아니라 회계 업무를 해보지 않겠소?" 이 한 마디가 청년의 삶을 바꿨다. 20년 후 그는 틸로니아와 다른 인도지역뿐 아니라 파키스탄, 노르웨이, 영국, 독일, 호주 등지에 초청 받아 공연을 벌이는 유명한 인형극 배우가 됐다. 람니와스 (Ram niwas, 45)씨가 그 주인공이다. 맨발대학에서 회계 교육을 받은 그는 6개월 후 회계사가 됐다. 맨발대학은 짧지만 압축적으로 교육했다. 1987년부터 1991년까지 그는 맨발대학의 회계업무를 담당했다. "맨발대학 더카우라 마을 센터에 나가서 회계 업무를 보게 되었을 때 주민들은 나를 높은 계급으로 생각하고 깍듯이 대해 주었어요. 제가 천민이라고 하자 그들은 깜짝 놀라며 천민 출신이 어떻게 이런 일을 하냐며 놀라워 했죠." 1992년부터 2년간 '바치푸라'라는 마을에서 일하며 그는 자신이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회계, 마을개발 역시 중요한 일이었지만 그는 그 이상의 일을 하고 싶어졌다. 그는 예전에 인형극을 배운 경험으로 낮에는 회계업무를 보고 밤에는 맨발대학 인형극팀과 함께 마을에서 공연을 시작했다. 1981년 시작된 맨발대학의 인형극은 인도 안에서만 4200개 마을에서 50여만명의 주민이 관람했다. 인기의 비결은 극의 주제에 있었다. 천민 출신의 억울함, 알코올 중독 남편에게 학대 당하는 부인들의 힘든 삶, 정부의 부패 등등. 이 인형극엔 정해진 각본이 없다. 줄거리는 준비한 기본 골격에 따라 관객들과 소통을 하면서 즉흥적으로 짜여진다. 우리가 본 공연 역시 그랬다. 람니와스씨는 '조킴차차'라는 365세의지혜로운 할아버지 역할을 맡았다. 조킴차차가 관객들에게 물었다. "하루에 8시간 일하고 얼마 받나요? 정부는 7루피를 최저임금으로 정해놓고 있답니다." 주민들은 깜짝 놀랐다. "우리는 2루피 밖에 못 받아요. 7루피를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인형은 대답했다. "정부 관료에게 엽서를 써서 당신들의 억울함을 이야기해보세요. 들어줄 거예요." 무대 위에서 신문지와 물, 몇 안 되는 염색 재료로 만들어진 인형은 보석으로 만든 듯 반짝반짝 빛났다. 무대 바깥에선 골동품 가게에서도 받아주지 않을 것 같은 초라한 인형이었지만 무대 위 인형은 브로드웨이에 내 놓아도 손색 없었다. 박수치는 우리에게 람니와스씨는 소년처럼 장난기 어린 표정으로 말했다. "힌두 신의 모습을 한 움직이지 않는 동상에 대고 기도하고 무엇을 바라는 것 보다 인형극이 더 도움 되지 않나요?" 맨발대학의 인형극은 글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삶에 많은 변화를 일으켰다. 글을 읽지 못하고 대중매체에 접촉이 없는 사람들이 자신의 권리를 깨닫게 된 것이다. 여성의 권리에 대한 공연을 본 여자들은 스스로 모임을 만들어 알코올 중독에 걸린 남편들의 폭력에서 벗어났다. 1981년 최저임금에 대한 인형극을 본 여자 50여명은 지방정부와 인도대법원에 자신의 권리를 요구해 최저임금을 받아냈다. 인형극을 통해 다른 이의 삶을 바꾸고 있는 람니와스씨는 20년 전엔 자신의 삶조차 바꿀 수 없는 '하리잔' 즉 불가촉천민이라는 계급의 굴레를 쓰고 있었다. 그의 부모는 청소부 일밖엔 할 수 없었다. 마을의 큰 길을 걸을 수도 없었고 마을 우물도 사용할 수 없었다. 그가 10살 때, 그의 부모는 그 일마저도 못하게 됐다. 그가 친구와 놀다 힌두 사원에 들어갔다는 이유만으로 마을 사람들이 그의 부모에게 벌을 준 것이다. 그 후로 그는 '하리잔'이란 계급을 받아들이기로 다짐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삶을 자손에게까지 물려주고 싶진 않았다. 양민 아이들 등 뒤에 서서 배운 풍월로 그는 20살 때 야학을 차렸다. 그러나 이것이 마을에 분란을 일으켰다. 천민이 어떻게 양민 아이들을 가르치냐는 이유였다. 그는 고향인 아코디아를 떠나야 했다. 아코디아 마을은 철저하게 카스트를 지키는 곳이었다. 이 어두운 평온함 속에 맨발대학의 틸로니아센터 사람들이 찾아왔다. 그들은 안전한 식수를 얻지 못하는 천민들을 위해 수동펌프를 설치했다. 높은 계급 사람들은 "왜 천민들에게 이런 시설을 제공해 주느냐"며 화를 냈다. 틸로니아센터 사람들은 "'당신들이 물이 필요하면 이곳에 와서 이용하라"며 묵묵히 펌프를 설치했다. "그 때 저는 충격을 받았죠. 그리고 틸로니아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어떤 사람들이 사는 곳인지 알고 싶어졌어요." 틸로니아의 맨발대학에 온 후 그의 삶은 바뀌었다. 큰 딸 결혼식 때 그의 고향집엔 다양한 계급의 손님 100여명이 모여 잔치를 벌였다. 고향 마을 사람들은 크게 놀랐다. 카스트가 법적으로는 폐지됐지만, 브라만과 양민이 하리잔의 집에서 음식을 나눠 먹고 차를 마시는 일은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수 천년이 넘도록 이어진 인도의 카스트 제도를 한 번에 깨뜨릴 수는 없어요. 만약 제가 그것을 부순다면 아마 저를 도와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예요. 하지만 다음 세대에는 카스트가 반드시 없어져야 하며, 없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람니와스씨는 기술을 가지고 있었고 다양한 계급의 사람들도 자신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것에 자신감을 가졌다. 그러던 중 집 안에서 청소만 하고 음식만 만들고 있는 어머니와 부인을 보게 되었다. "그 순간 '여성들 역시 불평등 속에 살고 있구나, 이들이 하리잔(천민) 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왜 여성들은 남성들과 똑같은 평등을 누리는 것이 허용되지 않을까'라는 의문이 생겼지요." 처음에는 불가촉민 문제만을 중요하다고 생각하던 그였지만, 맨발대학에서 생활하면서 여성이야말로 가정의 불가촉민이라는 인식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계급차별뿐만 아니라 남녀차별도 타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제 람니와스씨와 그의 부인, 딸들은 천민이라는 꼬리표를 떼고 당당히 살아가고 있다. 불가촉천민 출신으로 법무장관을 지낸 암베르카드 박사는 이렇게 말했다. "사회에서 가장 마지막에 있는 사람들에게 자선이 아닌 권리를 줘야 한다. 그리고 능력을 개발시켜야 한다." 람니와스씨는 맨발대학이 암베르카드 박사의 말을 실현하고 있다고 말했다. "빈곤한 사람들에게 돈을 주거나 뚝딱 집을 지어주는 것만으로는 빈곤이 해결될 수 없어요. 사회정의, 수용력, 평등에 열려있는 사회이어야 해요.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의 능력을 깨우쳐주는 겁니다." ↑불가촉천민 출신인 불가촉민인 람니와스씨(왼쪽)와 함께 맨발대학의 한 청년이 인형극 리허설을 하고 있다. 머니투데이 2007. 11.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