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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이 라마의 체취가 스민 '푸달라꿍'

오마이뉴스
▲ 성지인 조캉사원을 향해 오체투지하는 티벳인들의 모습. ⓒ 서부원 2005년 7월 31일(일) 날씨가 정말 뜨겁다, 아니 따갑다! 9시가 다 되어서야 시작되는 라싸의 아침은 조캉사원으로 향하는 티벳인 순례객들과 함께 시작된다. 이들은 지난 밤 코흘리개 아이들과 함께 길거리의 한 구석에서 노숙했을 것이다. 티벳인들은 이곳에 순례 오는 것을 최고의 덕이자 복으로 생각한다. 그러하기에 돈이 없어 몇 날 몇 일 노숙하는 것쯤은 너끈히 버텨내는 것이다. 그 근원적인 힘은 종교적 신심이다. 조캉사원을 에워싼 고풍스런 공간을 바꼬르(八角)라고 부른다. 라싸가 시작된 곳이며 구(舊)도심이라고 할 수 있다. 인접한 네팔이나 인도 등지에서 건너온 값싼 기념품들을 파는 가게와 노점들이 즐비하며 지금도 라싸의 상징으로 남아 여행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그 한 가운데 차량통행이 금지된 넓은 광장이 펼쳐져 있으며 이곳이 조캉사원으로 들어가는 입구다. 이른 아침부터 조캉사원의 입구에는 향불을 피우고 절을 하는 티벳인들로 인해 발 디딜 틈조차 없다. 그 유명한 오체투지(五體投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손을 뻗는 것을 시작으로 머리, 가슴, 배, 무릎, 발 등 전신을 땅에 맞닿도록 납작 엎드린 그들의 종교적 행위에는 극도의 겸손함이 배어 있다. 우리의 그것처럼 경건하거나 근엄하지는 않다. 그저 생활의 일부분이요, 함께 절하고 있는 주위 사람들과 웃음을 나눠가며 행하는 ‘반복적인’ 놀이일 뿐이다. “뭘 그리 간절하게 비시나요?”라는 질문은 적어도 그들의 행위를 저울질하고 모독하는 행위다. 이 질문을 오체투지하는 티벳인들에게 던지면 헛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할 뿐이다. 종교(행위)가 하나의 일상이 된 그들의 삶 속에 간구의 대상과 목적을 캐묻는다는 것 자체가 이곳에서는 우스꽝스러울 수밖에 없다. 티벳인들은 그저 사원 바깥에서 연신 몸을 던지고 있는데 나는 관광객 무리에 섞여 쓸리듯 내부에 발을 디뎠다. 조캉사원의 폐쇄적인 대전 주변에 호위하듯 모셔진 불상들의 배치가 자못 장엄하다. 반들거려 옥 같은, 닳은 돌과 나무에서 세월의 두께와 종교적 신심의 깊이를 알 수 있다. 지하궁전처럼 어둑하여 더욱 경건한 대전 안에는 정작 있어야 할 신심 가득한 순례자는 없고, 시끌벅적하게 연신 카메라 셔터만 눌러대는 관광객들만 넘쳐난다. 그런 조캉사원의 한 가운데에 서서 티벳 불교를 다시 생각해 본다. 달라이라마의 삶과 역사가 담긴 '푸달라꿍' 대전 내부 중앙에는 7세기 당나라의 원쳥꽁주(文成公主)가 티벳 최초의 통일 군주인 송첸감푸왕에게 시집을 오면서 가지고 온 사캬무니(釋迦牟尼) 불상이 모셔져 있는데, 티벳 최고(最高)이자 최고(最古)의 문화재로 손꼽힌다. 이를 통해 티벳에 불교가 전래되었고, 티벳의 토착 신앙(뵌교)과의 갈등과 융합 등의 변형과정을 거쳐 지금의 티벳 불교가 완성되었다. 분명 사캬무니 불상이라고 기록되어 있지만 머리에 화려한 화관을 인 다분히 여성스러운 관음불상 형태를 띠고 있고, 주변의 천수십일면(千手十一面) 불상이 에워싸인 것으로 보아 티벳 불교의 밀교적 성격을 잘 드러내주고 있다. 아슬아슬한 계단을 올라 옥상에 오른다. 조캉사원이 진정 라싸를 넘어 티벳의 중심임을 알겠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바꼬르 광장은 흡사 베이징의 천안문 광장을 보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한다. 서 있는 발 아래로 몇 시간 째 같은 자리에서 오체투지하는 티벳인들을 또 보게 된다. 그들에게서 절을 받고 있는 셈이다. 모독일 수 있겠다 싶어 얼른 자리를 피한다. 고개를 들면 저 멀리 우뚝 솟아있는 푸달라꿍이 한 눈에 들어온다. 장관이다. 대충 둘러보는 데에만도 두어 시간이 훌쩍 지났다. 이른 점심을 먹고 푸달라꿍에 올랐다. 조캉사원이 티벳의 정신적인 중심 공간이라면 푸달라꿍은 이곳 라싸의 랜드마크라고 할 수 있는 곳이다. 웅장하고 화려한 외관도 그렇지만 라싸 시내 어디에서도 볼 수 있어 방향과 위치를 알려주는 나침반 구실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푸달라꿍을 오르자면 약하나마 또 한 번의 고산 증세를 느끼게 된다. 건물을 받치고 있는 산을 돌아올라 푸달라꿍의 맨 꼭대기부터 한 층 한 층 내려오면서 관람하도록 되어 있어 일단 산을 오르는 데 가쁜 숨을 몰아쉬게 되어 조금은 고통스럽다. 이곳은 가장 위대한 지도자로 추앙되고 있는 5대 달라이라마부터 20세기를 연 13대 달라이라마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치열했던 삶의 흔적이 곳곳에 깊이 배어 있는 공간이다. 분명 그들의 생활 공간이자 통치 공간이되 불교적 색채가 두드러진 수양 공간이며 죽어서도 이 터를 떠나지 못하고 남게 되는 내세의 공간이기도 하다. 삶과 죽음이 자연스럽게 공존하는 공간. 그 사이에는 아무런 구분도, 벽도 없다. 수대에 걸친 달라이라마들은 갔지만 그들이 앉았던 자리, 누웠던 침상에는 생전에 사용했던 유품들이 그들을 상징하여 당당히 자리하고 있다. 비록 몽골의 지배를 받던 시기, 국제 정세와 외압, 몽골의 권력자인 칸(汗)의 존경과 배려에 의해 티벳 불교의 지도자가 (적어도 티벳 내에서) 현실에서의 통치 권력을 인정받게 되는 실제적 권력자로 군림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또 다른 이민족 국가였던 청(淸)에 의해 ‘달라이라마’라는 칭호를 받게 되면서 환생을 믿는 티벳인들이 기댈 수 있는 유일한 현신(現身)으로 여겨졌으며 지금까지 신격화되었다. 이런 달라이라마의 역사를 한 눈에 확인할 수 있는 곳이 바로 푸달라꿍이다. 푸달라꿍의 현 주인은 이곳에 없다. 1951년 중국의 무력 침공과 1960년대 티벳인들의 독립 시위의 격랑 속에서 아이러니컬하게도 (제국주의 시대, 티벳을 침략한 최초의 서양 열강이었던) 영국의 도움을 받아 인접한 인도의 한 외진 시골 마을(다름살라)에 망명 정부를 꾸리고 있다. 바로 이가 14대 달라이라마인 ‘톈진갸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