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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벳, 그 슬픈 이름과 함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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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는 북인도 다람살라의 맥그로드 간지, 오월이라고 해도 이곳의 뒷산은 아직도 눈으로 가득히 덮여 있다. 6월 말에서 7월이나 되어야 다 녹지만 9월이면 또 다시 눈이 쌓이기 시작한다. 그러니까 눈 녹은 산정을 볼 수 있는 것은 7,8월 2개 월 뿐이다.


곧 몬순이라고 부르는 우기가 온다. 특히 몬순의 중앙인 7,8월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비가 내린다. 강우량이 세계에서 두 번째 라고 하니 말이다. 집 없는 달팽이 수백 마리가 길가에 우글거리고, 마음 없이 걷다가는 두 세 걸음에 한 마리씩은 밟아 죽일 수 있다. 헌칠하게 뻗은 전나무 숲, 원숭이들.


그러나 다람살라의 얼굴은 역시 룽타다. 티벳 마을이나 티벳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에서는 으레 볼 수 있는 오색 깃발을 룽타라고 한다. 티벳인들은 부처의 말을 써 놓은 깃발이 바람에 나부끼는 것을 보면서 세상의 평화와 사랑을 기원한다. 나무와 나무 사이, 기둥과 기둥 사이, 그리고 건물과 건물 사이 그리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이 룽타는 그렇게 나부껴 왔고 앞으로도 나부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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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벳은 없다. 중화민국 시장자치주만 있을 뿐이다. 이른바 중국의 서북공정의 성공으로 티벳은 이 지상에서 사라지고, 이젠 사람만 남아 있다. 티벳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티벳의 이름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그 중심이 다람살라다. 티벳의 임시 정부가 있고, 티벳의 실질적인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가 이곳에 머물고 있다.


내가 다람살라에 온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가 한국에서 모금한 성금을 전달하기 위해서다. 그리 많은 돈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들의 독립운동과 영혼을 지키는 일에 조그마한 도움이라도 될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이곳 다람살라에 나환자를 위한 무료급식소를 설치하기 위해서였다. 성금은 이미 전달 됐고, 무료 급식소도 윤곽을 잡았다. 몬순이 끝나고 또 내가 한국에 다녀 온 8월 이후엔 가능하리라 본다.


그 날, 달라이 라마는 미국과 일본 순방을 마치고 돌아왔다. 그가 지나가는 길가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나와 티벳 국기를 흔들었고, 그를 보러 온 많은 외국인들을 향해 차 안에서 밝은 미소로 답해 주었다. 내가 아는 한국인 여자애는 그를 보자 울기도 했는데 이유를 물으니 너무 불쌍해서였다고 한다. 치과의사인 그녀는 잠시 일을 접고 인도 여행을 하게 되었는데 달라이 라마를 만나고 싶어 일부러 다람살라로 왔다고 하는데 이곳의 티벳 사람들만 보면 괜히 눈물이 난다고 했다.

 

이곳 다람살라 맥그로드 간지의 작은 도시는 벽 마다 티벳의 자유를 부르짓는 구호와 벽보가 쓰여 있다. 그리고 지난 3월 랏싸와 시가체등지에서 있었던 시위 현장에서 사살된 사람들의 이름과 사진들이 곳곳마다 붙여져 있다. 정말 끔찍한 사진들까지 있었다. 내장이 튀어 나온 채 길바닥에 쓰러져 있는 사람, 그리고 얼굴이 통째로 사라지고 목과 나머지 부분만 남아 있는 사진도 있었다.


달라이 라마가 거처 하는 사원인 남걀 사원 앞 작은 움막 같은 곳에서는 벌써 50여일 째 티벳 비구니들의 단식 투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30여명 되는 시위대 속에는 이제 열 살 남짓한 앳된 비구니도 서너면 섞여 있었다. 푸른빛의 머리와 새까만 눈동자 그리고 붉은 가사에서 쏟아져 나오는 비명이 날카롭게 내 가슴을 파고들었다. 카메라 폴더를 보다 말고 한 움큼 치솟아 오른 눈물을 훔쳐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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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위는 날마다 이어졌다. 칠거리라고 부르는 다람살라 중심에서 시작하여 남걀 사원으로 이르는 시위 길은 날마다 저녁때만 되면 촛불이 밝혀졌다. 어제는 한국인 여행자들을 모두 불러 모아 시위 속에 들어갔다. 그들이 외치는 구호가 있었는데 아무리 물어도 쉽게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한국말로 외쳤다. 티벳 사랑, 티벳 평화, 티벳 독립......


잃어버린 사람만이 잃어버린 사람의 슬픔을 안다. 아마 일본이나 미국 사람들은 모를 것이다. 아니 비록 안다고 해도 그것은 그저 머리에서 느끼는 감정일 뿐, 가슴 저 밑바닥에서부터 치밀어 오르는 분노와 절규 그리고 뼈저린 통한을 그들은 모를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35년 간 외세의 지배를 받아 본 우리, 그리고 아직도 강대국 사이에서 흔들리고 있는 우리로서는 티벳인들의 눈동자에 박힌 저 이글거리는 증오와 입술에서 입술로 옮겨지는 우렁찬 함성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 분명 알고 있다.


나는 티벳을 두 번 가 본적 있다. 첫 번 여행은 랏싸와 시가체를 중심으로 한 짧은 일정이었지만 작년에 있었던 여행은 좀 길었다. 그들의 성지라고 하는 카일라스까지 다녀왔다. 그리고 올해 12월 28일 경에 다시 티벳을 간다. 광주지역 전교조 교사들과 일부 우리 회원들이 지난 1월부터 매월 돈을 모으고 있다. 네팔 안나푸르나 트레킹까지 할 생각이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그곳에 머무는 동안 내내 가슴을 찢었던 기억들을 다시 반복해야만 한다는 게 지금부터 걱정이다. 정작 주인인 티벳은 없고, 중국만 살아 움직이는 티벳, 그 틈바구니에서 가까스로 숨만 쉬고 있는 중국인이 아닌 티벳인들을 또 다시 어떻게 봐야 할지 그게 벌써부터 걱정이 된다.


하지만 그럴수록 더 똑바로 봐야한다는 게 내 지론이다. 피한다고 피해지는 것도 아니고, 아니 슬프고 아픈 역사나 사실일수록 더 눈을 부릅뜨고 봐야 한다. 마치 자신의 이마를 행해 있는 총구를 똑바로 응시하면서 어서 방아쇠를 당기라고 외친 체 게바라처럼 말이다.


아, 티벳이여,

슬픈 이름의 나라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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