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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이라마는 돌아올수 있을까

오마이뉴스
달라이 라마는 돌아올 수 있을까
[르포 - 칭짱철로를 가다1] 외지인만 가득한 티베트의 중심 라싸
텍스트만보기   조창완(chogaci) 기자   
저명한 철도 여행가 폴 서로우는 그의 여행기 <중국기행>에서 "쿤룬산맥으로 인해 기차는 영원히 라싸에 가지 못할 것이다"고 썼다. 하지만, 칭짱철로의 시범 운행으로 1년 전에 그의 이야기는 오류가 됐고, 올 7월 1일부터는 많은 이들이 그 현장을 볼 수 있게 됐다.

▲ 중국 내륙지역과 티베트를 잇는 '칭짱 철도'.
ⓒ 중국정부 홈페이지
칭짱철로가 개통된 지 한 달여. 베이징, 충칭, 청두, 란저우 등에서 출발한 열차는 1~2일을 달려 티베트자치구 수도인 라싸에 닿는다. 중국 내지에서 티베트로 연결되는 이 철로 개통으로 엄청난 충격에 빠진 사람은 바로 티베트인들이었다.

기자는 8월 13일 칭하이성 성도인 시닝을 출발해 라싸에 이르는 여정을 따라가면서 칭짱철로의 개통에 담긴 여러 의미를 살펴볼 예정이다.

라싸의 한이 서린 칭짱철로

8월 23일, 칭짱철로 개통 후 가장 큰 티베트 행사인 쩌방스(哲蚌寺) 짠푸(展佛)가 열렸다. 짠푸는 티베트에서 가장 큰 행사이자 티베트인들의 정신을 모으는 중요한 행사다. 이 행사를 시작으로 쉐툰지에(雪頓節)가 시작한다.

▲ 비가 오는데도 행사장으로 향하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다.
ⓒ 조창완
쩌방스로 가기 위해 아침 일찍 숙소를 나선 기자를 맞은 것은 이슬비였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이 나처럼 쩌방스를 향해 걷고 있었다. 라싸는 같은 시간대인 베이징보다 2시간이나 늦게 해가 뜬다. 그 2시간의 차이는 작지 않다.

티베트는 원래 장족(藏族)의 땅이다. 기원전 7세기 중엽 이전까지 라싸는 황량한 초원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토번족의 수령 송챈 감포가 깨끗한 지취허(吉曲河)에 도취해 이곳에 도읍을 세웠다. 그는 자기 부족의 중심지를 라싸로 옮기고, 산꼭대기에 궁을 지었다.

기원전 641년에는 송챈 감포가 시장 지역을 통일했는데, 당나라에서는 그의 위세에 두려움을 느끼고 문성공주를 그와 결혼시켰다. 중국에서 가장 극적인 삶을 산 것으로 알려진 문성공주는 오행상극(五行相克) 원리를 근거로 큰 절(죠칸)을 지었다.

원래 그녀는 공주가 아니었지만 화번공주의 신분으로 티베트에 갔고, 그곳에서는 성녀로 추앙받을 만큼 위대한 인물이 됐다. 그 후 이곳은 시장의 정치, 종교 활동의 중심이 되었고 중대한 불교 활동도 많이 열렸다.

▲ 사원에서 괘불을 가지고 나와 행사를 시작하는 라마승들.
ⓒ 조창완
문성공주가 티베트에 간 이후 장족은 한족과 교류가 활발해졌고, 청나라 이후에는 정치적으로 더 밀접한 관계가 됐다. 특히 강희제 때나 건륭제 때는 청나라가 라마교를 국교로 하면서 판첸라마가 베이징과 러허(지금의 청더)에 방문해 거주하는 등 더욱 밀접한 관계가 됐다.

그런 상황에서 티베트의 운명을 바꿔놓은 것은 중국의 공산화였다. 우회하던 장정군은 티베트를 경유하면서 정치적 유대도 맺었다. 공산화와 함께 정치와 군사에서 현대화에 실패한 티베트는 중국의 영토로 편입됐다.

1965년 중국에서는 천이가 티베트를 방문해 달라이 라마와 회견을 가졌는데 결과는 좋지 않았다. 이후 티베트는 중국의 티베트 점령과 달라이 라마의 망명 등의 고통을 겪으며 독립을 시도해왔다.

그러나 티베트의 독립은 아직 이뤄지지 못했다. 오히려 지난 7월 1일, 미국이나 스위스 등 고산철도 기술자들도 손을 내저었던 칭짱철로가 개통됨으로써 중국의 티베트 지배력이 더 강화됐다.

이들 중 티베트인은 얼마나 될까

3650미터의 고산지형인데다 비가 내려 쩌방스까지 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결국 우산을 구하지 못한 이들은 뒤에 남았지만 그래도 쩌방스로 가는 길 곳곳은 인산인해를 이룰 정도였다.

▲ 괘불이 펼쳐진 모습. 많은 사람들이 하다를 괘불에 던지고 있다.
ⓒ 조창완
비로인해 행사가 취소되면 어쩌나 싶었는데 오전 8시가 되자 본전에서 수백의 라마들이 괘불(그림으로 그려서 걸어 놓은 부처의 모습)을 모시고 산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괘불이 걸릴 곳은 쩌방스 뒤쪽에 있는 산이다.

이윽고 행사장에 괘불이 도착하고 라마들이 행사를 준비한다. 행사장의 정면에는 석가모니의 불상이 놓여있고, 앞에는 티베트 불교의 활불(活佛, 살아있는 부처로 추앙받는 최고의 라마) 두 분이 앉아있다.

뒤에도 역시 라마들이 앉아서 행사를 준비한다. 수많은 참배객이 자신이 가져온 하다(哈達, 라마교에서 순수와 행운을 기원하는 백색의 천)를 걸어 괘불 위에 건다. 안녕과 행복을 기원하는 그들만의 의식이다.

행사가 시작되니 비가 멎고 하늘에 밝은 빛이 돌기 시작했다. 서서히 괘불이 올라와 산을 덮었다. 가장 중요한 부처의 얼굴은 경전이 쓰인 노란 천으로 가려져 있다. 활불들의 독경과 함께 부천의 얼굴이 나타난다. 많은 이들이 괘불을 향해 하다를 던진다.

▲ 행사장에 모인 많은 인파들.
ⓒ 조창완
산의 주위를 감싼 이들을 보니 얼추 잡아도 수만 명은 되어 보인다. 이들 가운데 티베트 인은 얼마나 될까. 정확히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20~30%를 넘지 않을 듯하다. 참가자의 대부분은 말끔하게 차려입은 한족 여행객들이고, 서양인들도 적지 않게 눈에 띈다.

▲ 행사장 주변에서 구걸하는 티베트 아이들.
ⓒ 조창완
기자가 행사장을 떠나는 순간에도 많은 사람이 속속 도착한다. 비가 오지 않는다면 괘불은 저녁 늦게까지 산에 걸려있을 것이다. 여행객들과 라싸 시민들로 인해 길은 완전히 아수라장이다.

사실, 쩌방스 짠푸는 단순한 불교행사라기보다 티베트인들의 친목을 도모하는 행사다. 그러나 이제 라싸로만 본다면 티베트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제 '신성한 땅'은 사라지는가

▲ 티베트의 상징인 포탈라궁.
ⓒ 조창완
라싸. 인구 30만의 이 도시에 철도가 뚫리면서 골드러시를 꿈꾸는 이들이 거대한 짐을 들고 끊임없이 내린다. 달라이 라마의 거처였던 포탈라궁 앞 광장에는 밝음을 상징하는 호수 대신 중국이 세운 해방기념비가 있고, 그 뒤에는 중난하이의 담장에 버금가는 티베트 정부 청사가 있다. 과거 경복궁을 가로막던 중앙청사와 같은 형상이다.

▲ 죠칸 사원에 있는 달라이 라마의 보좌. 아래에 꽃이 받쳐져 있다.
ⓒ 조창완
티베트 인들은 라싸로 오기보다는 여전히 고산 초원에서의 목축에 익숙하다. 그들은 대를 잇기 위해 출가하지 않은 딸에게 흰 빠오를 입혀 두 명의 아이를 낳게 한다. 아이의 아버지가 누구인지는 알 수 없다.

또 그들은 여전히 봄, 가을에 한 번씩 밖에 목욕하지 않을 정도로 원시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문명이 불편하다고 항의하는 듯 자신의 길을 막는 이들에게 스스럼없이 침을 뱉는 것도 그들의 모습이다. 밀려난 티베트 인들 대신 이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외지인들이다.

물론 티베트에 닿는 숭고한 순례자들의 모습은 아름답다. 또 티베트 인들의 달라이 라마에 대한 애정도 여전하다. 죠칸사원(따자오스)의 강학터에 있는 달라이 라마의 의자는 천으로 덮여 있지만, 아래에는 생화들이 모셔져 있어 이들의 달라이 라마에 대한 사랑을 알 수 있게 한다.

죠칸사원이 그들과 중국의 인연을 튼 문성공주가 가져온 석가모니 상을 모시기 위해 세워진 사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역사를 아는 티베트 인들은 만감이 교차할 것이다.

이제 불과 1개월하고 23일이 흘렀는데 라싸는 이미 무너져 가고 있다. 여전히 수많은 라마교인들이 오체투지로 라싸를 향하고 있고, 그 길에서 숨을 거두지만 그들은 자신의 종착점인 라싸가 어떤 모습인지 과연 알고 있을까. 이런 상태가 계속된다면 더 이상 라싸를 '신성한 땅'(神聖之地)으로 부를 수 있을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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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8-23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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