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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도시를 지나니 백설 봉우리가

오마이뉴스
소금도시를 지나니 백설 봉우리가
[르포-칭짱철로를 가다 ②] 칭하이-꺼얼무 열차
텍스트만보기   조창완(chogaci) 기자   
'하늘철도'로 일컬어지는 칭짱철로가 개통된 지 한 달여. 중국 내지에서 티베트로 연결되는 이 철로 개통은 티베트 지역이 중국 내부와 연결되면서 엄청난 변화를 예고한다. 오마이뉴스 조창완 통신원은 지난 8월 13일 칭하이(靑海)성 성도인 시닝(西寧)을 출발해 티베트자치구 수도 라싸에 이르는 여정을 따라가면서 칭짱철로의 개통에 담긴 여러 의미를 살펴볼 예정이다. <편집자 주>
▲ 칭장철로 시닝-꺼얼무 구간의 모습. 하얀 부분은 눈이 아니라 소금이다.
ⓒ 조창완

ⓒ 오마이뉴스 고정미
전에 안치환이 부른 '소금 인형(류시화 시)'이라는 노래를 좋아한 적이 있다. 자신의 존재가 사려져 버릴지라도 뛰어든다는 내용의 가사가 좋아서다. 사실 기자가 그러지 못하기에 그런 노래가 더 절절했는지 모른다.

칭짱철로 첫 시작점은 소금도시였다. 칭짱철로의 앞을 말하는 '칭(靑)'은 칭하이성(靑海省)을 말한다.

칭하이의 가장 큰 특징은 '소금의 성'이라는 것이다. 이 곳은 과거 바다 지형이었던 곳으로 거대한 차이따무 분지를 비롯해 대부분의 지형이 염분으로 가득 차 있다. 이 곳에 철로를 놓는다는 것은 너무나 무모한 일이었다.

하지만 소금의 도시에 1984년 철로가 뚫렸다. 20년이 넘게 걸리는 공사였다. 물론 에 문화혁명 기간이 있었으니 공사가 제대로 진행될 리도 없었지만 그만큼 난공사라는 의미이도 하다. 그 곳에 가면 어디서든 짠 내음이 난다.

▲ 차이따무 분지에 있는 소금지대. 하얀 소금바다를 이룬다.
ⓒ 조창완
20년 동안 뚫린 소금 도시의 기찻길

칭짱철로의 공식적인 시작점은 칭하이성의 성도 시닝이다. 시낭은 한 마디로 표현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특이한 종교의 도시다.

우선 장족 불교 최고의 지도자 중 하나인 종카바(1357~1419)가 태어난 곳이다. 그래서 타얼스라는 유명한 사찰이 있다. 하지만 가장 큰 종교는 회교다. 동관칭전따스를 비롯해 사방에 회교 사원이 있는데, 아침과 점심으로 일을 멈추고 알라를 위해 경배한다.

또한 초반기 불교의 전래 사찰인 베이찬스는 이제 도교 사원인 투로우관으로 바뀌어 중국인들이 가장 즐겨찾는 곳이 됐다. 거기에 근대에는 다양한 서방 교회들이 몰려와 적지 않은 기독교당과 천주교당까지 남겨 놓았다.

타얼스를 먼저 가봤다. 우리에게 익숙지 않지만 종카바는 라마 불교의 최대 교파인 황교 거루파의 창시자다. '초대 달라이 라마'라고 하면 더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그는 능력을 인정받아 16살에 라싸로 향했고, 그 곳에서 최고의 승려로 추앙받았고 정권의 지지도 받았다. 그의 모습은 티벳 사원 어디서나 가장 많이 볼 수 있다.

연꽃같은 봉우리들로 둘러싸인 타얼스는 종카파의 어머니가 작은 불당을 만들면서 시작한 사원인데, 달라이라마 8세의 도움으로 황교 6대 사원 중 하나가 됐다. 자연 염료로 그린 벽화, 버터로 만든 모형 '수요우화', 입체감이 뛰어난 자수 등의 '3절'로 유명한데, 중국 무형문화재 중에서도 최상급으로 친다.

▲ 왼쪽부터 벼랑에 깎아지를 듯 서 있는 베이찬스 사묘, 시닝의 이슬람 사원 둥관칭전스, 타얼스에서 경통을 돌리는 라마교 신도 할머니.
ⓒ 조창완
▲ 이슬람 교도들이 둥관칭전스에서 기도를 하고 있다.
ⓒ 조창완
불교+회교+도교+기독교+천주교

둥관칭전스도 들렀다. 명태조 홍무 12년(1380)에 만들어졌으며, 중국 서북지역 4대 이슬람사원 중 하나다.

예상과 달리 이방인의 방문을 그다지 막지 않았다. 1시 반이 되자 이윽고 이리저리 시간을 보내던 신도들이 본관과 별관에서 일제히 경배를 드린다. 우리의 선입견과 편견 속에 회교는 어떤가. 하지만 이렇게 성스럽게 예배를 드리는 이들이 폭력의 경계를 넘나드는 것이 얼마나 절실하기 때문인가, 어렴풋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도교 사원으로 바뀐 베이찬스는 시닝 베이산 절벽 사이에 있다. 북위 명제 시대(477~499)에 짓기 시작했으니 근 1500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 하지만 이제 절의 색채는 많이 사라지고 투로우관이라고 불리는 도교 사원으로 다양한 도교의 신들이 모셔져 있었다.

사원은 누각이 허공에 걸려 있고, 구조가 기묘하다. 안에는 조경 도안과 불교 예술 벽화, 각종 불상들의 조각이 있는데, 보호를 위해 접근을 금하고 있다.

불교적인 색채를 볼 수 있는 것은 베이산 정상에 있는 닝소우타 정도다. 물론 근대에 기독교인들이 들여와서 세운 교회나 성당도 적지 않다. 칭하이에는 황위앤 기독교당을 포함해 5개 이상의 기독교당이 있고, 차오양 천주교당을 포함해 4곳 이상의 천주교당이 있다.

어쩌면 칭하이는 세상의 모든 고급 종교들이 옹립된 곳 같다. 사실 차이따무 분지의 8세기 유적에도 동서 교류의 흔적이 흔연하니 이 역시 신기한 일이 아니다. (中國國家地理 地理 2006년3월호 吐谷渾 기사 참고)

▲ 핵탄두 실험을 관찰하던 관측대 모습. 파편이 튄 자국이 있다.
ⓒ 조창완
▲ 칭하이후 니아오다오. 수평선이 보이지 않아서 시하이(西海)라도도 불렀다.
ⓒ 조창완
소금반 흙반, 그 아래엔 석유가

시닝에서 기차나 버스로 한시간 반쯤 달리면 칭하이후가 나타난다. 해발 3200m에 있고 면적은 4500㎢로 중국 최대의 염호다. 호수라기보다는 바다에 가까운 칭하이후는 장족들에게는 신성한 호수 가운데 하나다. 그래서 차를 타고 가다가도 종종 오체투지를 하며 호수를 도는 이들을 볼 수 있다.

칭하이후와 차이따무 분지의 경계인 상피산(해발 3817m)을 지나면 소금 내음이 더 진해진다. 차카얀후를 비롯해 투오쑤후·넝하이후 등 차이따무에 있는 호수는 모두가 염호다.

그런 만큼 땅은 대부분 염분 지역인데, 특히 서부 지역은 땅반 소금반일 정도로 염분이 강하다. 행운인 건 그 가운데 유전도 있다는 것이지만 기차 길을 닦는데는 최악이었을 것이다.

기자 일행은 길을 잘못 들어 차이따무 분지로 새로 놓은 도로로 150여km나 더 들어가는 실수를 했다. 다행히 길을 찾아 돌아오는 길에 우리는 분지에 있는 천연가스 시추공들을 볼 수 있었다. 조금 더 실수로 갔다면 아얼진산 부근의 석유 시추공까지 볼 수 있었는데 안타까운 일이었다.

▲ 차이따무 유전의 시추공 모습.
ⓒ 조창완
중국은 현재 세계에서 미국 다음으로 석유를 많이 수입하는 나라다. 현재의 발전 속도로 보면 더욱 증가될 것이다.

자국내 생산을 늘리겠다고는 하지만 늘어나는 외환 보유고를 생각할 때 석유 수입 규모는 더욱 늘어날 것이다. 사실 이미 외교의 상당 부분도 석유 확보에 있는 게 사실이다.

따칭이나 탕구·신장 백리유전 등 거대한 유전들도 있지만 당분간은 수입에 의존하고 싶은 게 중국의 심정일 것은 뻔한 이치다.

▲ 차이따무 분지의 신기루. 멀리 보이는 것은 바다가 아니라 증발기류로 만들어진 신기루다.
ⓒ 조창완
소금 도시를 지나는 것은 마치 사막을 지나는 것과 비슷했다. 끝없는 지평선 너머로 마치 물결같은 것들이 보였다. 증발하는 기운이 뭉쳐서 보이는 것이다. 달려도 달려도 길의 끝은 없고, 다시 소금길 뿐이다. 이 소금 땅을 빠져 나오자 멀리서 기차가 보였다. 그 길 역시 소금반 흙반의 땅인데 신비하게 철로가 놓여 있었다.

칭짱철로가 완공되면서 보강 공사를 하기 위해 사람들이 모여있었지만 그것은 정말로 소금 위에 놓인 길이었다. 그 끝에 꺼얼무시가 있었다. 인구는 20만이지만, 면적은 13만 5400㎢로 세계 최대의 도시다. 실제로 남한 면적(약 10만㎢)보다 더 큰 시(市)라니.

전설의 쿤룬산... 장링양의 운명은?

▲ 8월 말에는 이동하는 시기여서 기차에서 쉽게 장링양을 볼 수 있다..
ⓒ 조창완
다음날 지프차로 커커시리를 취재하기 위해 들어갔다. 중국인들에게 이 곳이 익숙한 것은 2004년 개봉해 큰 반응을 얻은 영화 <커커시리> 때문이다. 밀렵꾼에 맞서 장링양을 보호하는 대원들 간의 처절한 혈투를 담고 있다.

커커시리는 면적만 해도 4만5천㎢인데다 평균 4600m의 고산 지형이다. 그 곳을 지킨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게다가 장링양의 모피는 인도 카슈미리 지역에서 가공되어 서구 귀부인의 모피로 팔리는데, 한 마리에 1만5천불에서 17만불까지 육박한다. 밀렵꾼들로서도 생사를 걸 수 있는 돈임에 틀림없다.

칭짱철로의 개통은 장링양의 운명에 어떻게 작용했을까. 그다지 나쁘지는 않은 것 같았다.

우선 철로와 공로가 지나는 4군데에 상징처럼 자연보호지구대가 생겼다. 한 곳에 평균 4명씩 16명이 근무하는데, 사람들은 모두 차있지 않지만 나름대로 기능은 하고 있었다. 지난해는 몇 명이 검거됐는데, 올해는 아직 검거된 밀렵꾼이 없으니 나름대로 효과를 내고 있는가 보다.

장링양은 보통 8월에 서쪽에서 철로 너머인 동쪽으로 이동하는데, 이동 중에 많은 장링양 떼를 만날 수 있었다. 보호지역의 전문가들은 두 가지로 분석했다. 국가적인 보호와 온난화로 인한 먹이의 증가로 생존조건이 좋아졌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 신화속에서 많이 등장하는 쿤룬산의 입구.
ⓒ 조창완
다시 쿤룬산을 넘어서 꺼얼무로 돌아왔다. 쿤룬산은 사실 주는 감회가 너무 많다. 심지어는 신화전설에서 쿤룬산(곤륜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던가. 심지어 '백사전'에서도 백사가 허선을 살리기 위해 신약을 구하러 간 곳이 쿤룬산이다.

쿤룬산이 그렇게 불린 것은 사실 접근하기가 그만큼 어려워서일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있다. 쿤룬산이 새하얀 백설의 봉우리를 잃고 혼돈할 때 인간도 그 분노로 분명히 멸망할 것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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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8-30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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