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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전은 하지만 우리로서는 혼돈이죠

오마이뉴스
"발전은 하지만, 우리로서는 혼돈이죠"
[칭짱철로를 가다 ④ - 마지막] 붕괴돼 가는 티벳의 역사
텍스트만보기   조창완(chogaci) 기자   
▲ 티벳에서 가장 큰 조캉 사원의 벽에 기대 시간을 보내는 예배자들.
ⓒ 조창완
티벳에서 라싸와 남초, 르카저 등을 돌아보고 린즈(林芝)를 갈 예정이었는데, 베이징에 볼 일이 생겨 일정을 당겨 돌아왔다. 라싸의 사람들을 본 기억은 철마에게 습격 받아 우왕좌왕하는 양들을 보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

눈이 밝은 기자에게 라싸는 단 한 번의 횡단으로 익숙해졌다. 포탈라궁을 지나는 베이징루(北京路)를 기준으로 길이 동서로 길게 뻗어 있었다.

둘째날 일어나 라싸의 아침을 찍기 위해 포탈라광장으로 향했다. 라싸의 아침은 전날 비로 힘들었던 날을 제외하고는 하늘에서 가장 가까운 고도 답게 맑고 깨끗하다.

그 아침을 채우는 이들은 순례자들이었다. 순례자들은 장족 불교를 믿는 이들이라면 어디서든지 왔다. 그들은 아침에 꼭 동쪽의 포탈라궁 앞으로 와서 오체투지로 절을 하고, 다시 서쪽으로 가서 경통을 돌리며 포탈라궁을 찾았다.

이른 아침 포탈라궁을 꽉 메우는 순례자들

포탈라궁은 밀려드는 여행객으로 몸살을 앓아 현재 하루 1000명 밖에 받지 않는다. 낮 12시부터 서문에서 표를 파는데, 아침부터 손등에 접수번호를 적어주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밀린다. 접수번호만 적으면 다음날 아침부터 오후 늦게까지 입장시간을 알려준다. 그 시간에 맞추어 입장하면 되는데 생각보다 밀리지 않았다.

포탈라궁 안은 철저히 여행 라인을 따라서 가야한다. 앞에는 일련의 일본 관광객들이 있었다. 가이드가 내부의 개요를 설명하고, 단정한 차림의 전문가가 다시 관련 역사적 배경을 설명했다. 부러운 여행 패턴이다.

일반인들에게 공개된 포탈라궁 내부의 주요 구조물들은 활동을 하는 전각과 역대 달라이 라마를 모신 곳이 있다. 바이궁(白宮)으로 들어가자 벽의 북쪽에 문성공주(文成公主)가 티벳에 들어오는 그림이 있다.

티벳 역사상 가장 위대한 군주인 송찬감포(松贊干布, 617~650)는 '정관의 치'로 유명한 당태종과 쌍벽을 이룰 만큼 강성한 세력을 가진 티벳(토번) 왕으로 당나라에 당당하게 '화번공주'(양국의 친선을 위해 상대국에 공주를 보내달라는 제도)를 요구했다.

이에 문성공주가 티벳을 향했다. 티벳으로 간 그녀는 단순한 볼모가 아닌 송찬감포에 버금가는 존경받는 인물이 됐다. 그녀가 모셔간 석가모니는 가장 큰 사원 중 하나인 조캉(따자오스)의 주불이 됐다. 사후 그녀는 가장 영험한 티벳의 여신이 됐다. 또한 한족 불교의 사신이기도 했다. 그녀를 통해 티벳과 한족 교류의 싹이 튼 것이다.

티벳-한족 교류의 싹을 띄운 문성공주, 그러나...

그러나 이후 이런저런 일로 티벳과 중국은 갈등이 생기기 시작했다. 특히 17세기 말 6대 달라이라마부터는 정치적 불안정이 계속됐다. 그의 어린 시절을 돌보던 섭정인 상게 갸초는 몽골계 준가르제국의 갈단과 정치적 힘을 공유했다.

준가르는 신장 북부지역에 있는 왕조로 상대적으로 강한 청나라에 밀려 서서히 멸망해가는 왕조여서, 상게 갸초의 선택을 그다지 현명하지 못했다. 반면에 상대편에서는 중국 역사상 최고의 황제 중 하나였던 강희제와 호쇼트의 라짱 칸이 동맹했다. 호쇼트는 지금의 칭하이(靑海)에 근거를 둔 왕조로 티벳이 중국으로 가는 길에 필수적으로 거치는 지역이다.

따라서 힘의 역학관계는 상게 갸초와 준가르에게 불리하게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6대 달라이라마 창양 갸초는 정치적 파장을 이기기에 유약한 낭만적인 시인이었다. 그는 자신의 처소로 여인을 불렀고, 그 갈등을 시로 읊었다.

ⓒ 오마이뉴스 고정미
어여쁜 임을 따르려니
불도를 걷기 힘들고
깊은 산 속에서 수행하려니
임을 그리는 한 조각 마음이 걸리네

지성을 다해 떠올리는 부처님 얼굴은
도무지 마음 속에 보이지 않는데
생각지 않으려는 임의 얼굴은
더욱더 또렷이 떠오르네

내 마음을 온통 빼앗는 사랑하는 이여!
우리가 맺어질 수만 있다면
그대는 바닷속 가장 깊은 바닥
그 곳에서 건져 낸 예쁜 보석이리
(김호동 '황하에서 천산까지' 중에서)

그는 1706년 포탈라궁에서 납치되어, 동으로 향하다가 칭하이후에서 사망했다. 티벳은 이후 정치적 혼돈속에서 근대를 맞았다. 포탈라 궁 안을 돌아보면서 기자의 눈에 띈 것은 1956년 14대 달라이라마와 중국 외교부장 첸이(陳毅)가 회담한 둥르광뎬(東日光殿)이었다. 이곳에서의 회담은 순조롭지 못했고, 결국 달라이라마는 망명길에 접어든다.

그리고 판첸라마는 대신에 베이징에서 기거하며, 종교적 권리를 행사한다. 판첸라마는 아미타불의 화신으로 달라이 라마와 쌍벽을 이루는 티벳의 지도자다. 강희제 이후 판첸라마와 청나라의 관계가 가까워지자 상대적으로 달라이라마와 중국과의 관계는 약간의 이상기류가 생기기 시작했다. 달라이라마 망명 이후 판첸라마는 베이징에 거주했는데, 89년에 10대 판첸라마가 입적했다.

베이징에 거주하며 목청을 낸다지만 판첸라마 역시 이미 박제화된 종교 지도자일 뿐이다. 이번 쉐둔지에(雪頓節, 티벳의 주요축제로 요구르트 축제를 뜻하지만 종합축제의 성격을 가졌다) 행사에도 판첸라마가 라싸를 방문했지만 시종일관 군부의 호위 속에서 행사에 참여했을 뿐이다. 거기에 11대 판첸라마는 14대 달라이라마가 지정한 치에키 니마와 중국 정부가 인정한 기알첸 노르부가 공존해 사실상 300년 전 못지 않은 혼돈 속에 있는 셈이다.

▲ '라싸의 톈안먼 광장'으로 불리는 바코르 거리에서 본 조캉 사원.
ⓒ 조창완
경배는 조캉에서도 마찬가지다. 아침 8시면 많은 이들이 문으로 들어가 경배를 시작한다. 문성공주가 가져온 석가모니상은 물론이고 문성공주상이 있기에 어디보다 번성한 사원이다. 사원의 문 앞에서 숨을 멈춘 듯 누워자는 순례자, 무심한 생각으로 아이를 업고 절을 하는 순례자들이 돈다. 그들의 눈에는 알 수 없는 허공을 담고 있다. 길고 긴 인생의 업을 내려놓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을 넘어서 텅 빈 눈을 가진 이들이 많다.

'라싸의 톈안먼 광장' 같은 바코르 거리는 이미 상업거리가 됐다. 달라이라마의 궁전인 노브링카는 쉐둔지에를 맞아서 30년전 운동회를 맞은 시골 초등학교 같았다. 특이하게 티벳에서 대대적으로 마케팅을 시작한 버드와이저 맥주 부스가 여러 군데 걸쳐 펼쳐져 있다. 달라이라마의 주 기거처인 신궁(新宮) 앞에서는 티벳의 가면극인 장희(藏戱)가 펼쳐지고 있었다. 장희야 그렇다 치고, 다른 것들은 마치 경복궁에서 시골 운동회가 펼쳐지는 느낌이었다.

신비를 벗는 고산 호수와 산들

▲ '하늘 호수' 남초는 설산인 니엔칭탕구라산을 병풍 삼고 있다.
ⓒ 조창완
다음날 하루를 잡고 남초(納木錯)로 향했다. 남초는 티벳어로 '하늘의 호수'라는 뜻이다. 가는 길에 펼쳐진 협곡의 농원은 송찬감포가 왜 이곳을 자신의 궁전으로 삼았는지를 충분히 인식하게 했다. 협곡으로는 잘 익은 밀밭이 있었는데, 이곳에는 외자기업들의 팻말이 꽂혀있어 무공해 농업기지임을 실감시켰다.

양파징(羊八井)부터는 아름다운 설산들이 펼쳐졌다. 대부분 만년설산이기 보다는 단기적으로 내린 비가 기온이 낮은 고산에서 눈으로 바뀐 탓에 만들어진 설산이었다. 당슝(堂雄)을 지나 해발 5000m에 달하는 언덕을 넘자 남초가 나타났다. 하늘호수. 호수는 너무 넓어서 한 눈에 담을 수 없다. 맑은 날이지만 수평선이 펼쳐진 곳을 우리의 개념으로 호수라고 하기에 너무 넓었다.

일행은 호수의 한 켠에 있는 섬에 들렀다. 워낙에 고도가 높은 곳이어서 맑은 날씨인데도 가끔은 비가 쏟아졌다. 한 농가에서 몸을 달래고 한참이나 차를 마시자 주인인 듯한 남자가 다가왔다. 웃으면서 말을 건넸다. 보아 하니 6~7명쯤 되는 형제 부부가 장사를 한다.

"너 어디 사람이냐."
"한국사람. 당신은 장족?"
"아니, 난 라구주(拉枯族, 검은 옷을 좋아하는 소수민족으로 난창지앙 근처에 주로 거주)."
"음 라구주. 요즘에 손님 많이 늘었지?"
"응 매년 두 배씩 느는 거 같아."
"와 부자됐겠다."
"좀."
"아이는 학교 다녀?"
"응, 좀 떨어진 곳에 학교가 있어."
"다행이네. 그런데 한 식구들이 이거 해서 먹고 사니."
"응. 그런 거 말고 나한테 좋은 천주가 있는데."
"그게 뭔데?"
"응, 우리가 신성하게 생각하는 물건이야."
"그런데 그걸 왜 나한테 팔아."
"그냥 너한테 맞는 것 같아서."

▲ 남초 호수에서 작은 가게를 하는 '라구주' 가족들.
ⓒ 조창완
결국 비슷한 또래의 이 친구는 장사 속으로 바뀌었다. 필요 없다는 손사래를 몇 번 하다가 적당히 흥정해 샀다. 그래도 꽤 비싼 가격이다. 아내에게 선물한다는 생각에 크게 마음 먹었다. 티벳인들은 천주(天珠)를 상당한 보석으로 생각한다. 천주는 유리처럼 된 보석에 다양한 수의 눈(眼)이 있는 보석이다.

드넓은 남초의 한 켠에는 이 주변을 연구하기 위한 관측소가 하나 있었다. 사람들을 볼 일이 드물어선지 3명의 연구원들은 우리 일행을 유난히 반갑게 맞았다. 그들은 날로 심각해지는 온난화와 그로 인한 빙하의 변화 등을 관찰한다. 호수의 남쪽을 감싼 니엔칭탕구라산(念靑唐古拉山 7162m)의 주봉은 만년설산이었지만 갈수록 그 모습이 위축되고 있다고 전한다.

티벳 신화에서 니엔칭탕구라산은 연인과 부부의 사랑을 영원히 이어주는 곳이라는 믿음이 있는 가장 영험한 산이다. 또 이 산 속엔 신비한 수정궁이 있는데 그 궁안에는 수많은 보석이 있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하지만 급속한 온난화로 인해 이제 그 신비를 벗겨내야 할 지도 모르는 처지가 됐다.

판첸라마의 근거지 '르카저'... "발전은 혼돈이죠"

남초에 다녀와서 르카저를 들렀다. 가는 길에 한 장족 청년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청년은 베이징에서 대학을 다니는 엘리트였는데, 친구들과 라싸에 왔다가 잠시 시간을 내 고향에 들르는 길이었다.

"곧 졸업을 하는데 졸업하면 베이징에 남을 건가요?"
"아뇨. 고향에 돌아올 겁니다. 전공이 경영이니 일자리를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좋은 대학을 나오니, 그럴 수 있겠네요."
"확신은 못해요. 다만 고향에 돌아와서 일을 하고 싶어요."
"칭짱철도가 장족들의 발전에 도움을 많이 줄까요?"
"그럴 겁니다. 다만 타지사람들이 많이 들어오기 때문에 다른 문제들도 있겠지요."
"문제라면?"
"제 고향 르카저만 해도 갑자기 타지인이 늘었어요. 발전은 하지만 우리로서는 혼돈이죠."

다른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티벳 문제에 관해서 더 폭넓은 대화를 하지 못했다. 차 안에는 다양한 사람이 타고 있었기에 함부로 말을 할 수 없다는 눈치가 보였다.

▲ 판첸 라마의 궁전인 르카저 자스룬푸.
ⓒ 조창완
르카저 가는 길은 훗날 칭짱철로가 연결되어 네팔 등 히말라야로 향할 때 경유하는 길이다. 니무(尼木)에서부터의 길은 협곡과 야루장푸장(雅魯藏布江)이 함께 있어 철도를 놓기 쉽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다른 길은 비교적 평탄해 철도를 놓는데 큰 어려움이 없어 보였다. 더욱이 라싸에서 르카저 가는 길은 겨울에도 영하 10도 이하로 떨어지는 날이 별로 없이 꺼얼무-라싸 구간에 비하면 휠씬 쉬운 길이다.

결국 기술적인 부분보다는 경제적인 효과가 철도 건설을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마오주의자들까지 활동하는 네팔이나, 자국의 공산품 생산 능력이 떨어지는 인도가 중국 상품들의 유입을 꺼려 철로를 달갑게만 생각하지 않을 수 있는 게 문제다.

라싸 노브링카가 달라이라마의 근거지라면 르카저에 있는 자스룬푸스(札什倫布寺)는 판첸라마의 생활 근거지다. 달라이라마와 판첸라마는 환생을 관리하는 중요한 동반자였지만 현대 들어 판첸라마가 중국 정부에 근접하면서 두 라마의 거리는 멀어졌다. 결국 지금은 달라이라마가 지정한 판첸라마와 중국 정부가 지정한 판첸라마가 공존하는 현상까지 벌어지고 있다.

달라이라마와 판첸라마는 티벳의 제정일치를 총괄하는 직위였던 만큼 라마 제도가 문제가 생긴다면 티벳의 역사 붕괴는 엄청나게 빠를 것이 뻔하다.

술로 보낸 일주일 여행... 술로는 질 수 없지!

▲ 자스룬푸 안 라마승려들의 거처. 꽃이 조화롭다.
ⓒ 조창완
기자가 도착한 날은 르카저에서도 히말라야 여행 축제가 열리는 날이다. 제법 큰 도시의 곳곳에 장터도 생기고, 산골에 사는 이들까지 특산물을 들고와 파는 한편 도시구경을 하고 있었다. 현지 안내인의 소개로 자스룬푸를 돌아봤다.

현재 판첸라마는 대부분의 생활을 베이징에서 한다. 달라이라마는 피신을 떠났다고 해도 판첸라마 역시 정치적 이슈를 만들 수 있기 때문에 거의 볼모와 같은 생활을 하는 셈이다. 자스룬푸는 수도자들이 여전히 많지만 주인은 없고, 죽은 판첸라마들의 영탑만이 그곳의 역사를 말해주는 슬픈 곳이다.

다시 야루장푸장의 긴 강줄기를 따라 라싸로 돌아와 항공기 편으로 베이징에 도착했다. 일주일 동안의 티벳 생활을 술로 보냈던 것 같다. 같이 한 중국 측 참가자들에게 한국 사람의 술 실력(?)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억지로 술을 마셔댔다.

대부분은 거절하지만 한참 술을 하다보면 그들의 입에서 먼저 한국에 관한 얘기가 나왔다. 한 중국인 기자는 항일 무장 테러의 대부분은 한국인이 한 것이라며, 한국인들이 위대하다는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한류나 축구 이야기가 나오면 그들은 한국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 포탈라궁에서 본 광장. 정면에 높은 탑이 시장해방기념비, 뒤가 시짱 인민정부다.
ⓒ 조창완
하지만 그들의 취중진담과 글은 분명한 편차가 있을 것이다. 사실 동북공정 등 한국을 보는 그들의 시각에는 분명히 오만함이 있을 게 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이 한국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다면 한국은 영원히 존재한다.

한국이 그 역사에서 완전한 독립국을 유지해온 것은 기적이라고 쓴 한 중국 지식인의 글을 봤다. 역사에 기적은 없다. 역대 중국 정권 가운데 한반도와 불화해 좋은 결과가 없었다는 역사를 아는 한 중국은 한반도를 상대로 한 패권주의를 만들지 말아야 할 것이다.

▲ 야루장푸장을 건너는 소가죽 배.
ⓒ 조창완

▲ 유장하게 티벳을 지나는 야루장푸장의 르카저 구역.
ⓒ 조창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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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9-13 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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