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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제 바자르에서 본 티벳 가는 길

오마이뉴스
남제 바자르에서 본 티벳 가는 길 [오마이뉴스 2006-07-07 09:00] [오마이뉴스 강경원 기자] ▲ 박물관과 함께 있는 호텔과 파고다 : 배경은 탐 세르쿠 봉 ⓒ2006 강경원 식당에 가니 요리사는 없고 로지 관리인만이 자리를 지킨다. 비수기라 요리사는 카트만두에서 겨울을 보내고 봄에 돌아온단다. 한 쌍의 영국인 연인과 가이드와 포터, 네 명이 막 불을 지핀 난로에 둘러 않아 잡담을 한다. 가이드는 서투른 영어와 네팔어를 섞어가며 주변 사람들을 계속 웃기기만 한다. 그의 표현대로 '팬케이크 통'(연로로 쓰기 위해 말린 소똥을 넣은 통)을 깔고 앉아 잠시도 말문을 멈추지 않는 것이었다. 영국인들은 이내 까르르 웃기만을 반복한다. 내가 주문한 볶음밥은 냄비에 눌어붙은 검은 재까지 뒤섞여서 쓴맛이 났다. 푸념을 하면서 다른 메뉴를 다시 주문했으나 그 결과도 신통치 않았다. 가뜩이나 입맛을 잃은 상태에서 관리인의 요리는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다. 내 친구가 가져온 비상식량으로 저녁을 때운다. 발만 떼어도 삐걱거리는 마루를 통해 화장실에 갔으나 물은 이미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춥고 건조하여 콧구멍은 완전히 막혀버렸다. 또 잠을 설치는 수밖에 없다. 밤새 개 짖는 소리와 까마귀 우는 소리를 들으며 은근히 날이 밝아 오기를 기다린다. 고소 적응을 위해 여기서 하루를 더 쉬어가야 한다. 아침에는 남제의 뒷산에 올라 경치를 즐기고 고소 적응 훈련을 한다. 남제를 둘러싼 뒷산의 서쪽 끄트머리에 이르니 타모(Thamo·마을)를 거쳐 티베트로 가는 길이 보인다. 거기에는 소수력 발전소가 있는데, 남제의 전기는 거기로부터 끌어오는 것이다. 오르는 길에는 마니석이 군데군데 놓여 있고 오색의 룽다가(불교 경전을 쓴 깃발) 바람에 나부낀다. 동쪽으로는 '어머니의 목걸이'라는 뜻의 아마 다블람 봉(6856m)이 머리만 봉긋 내밀고 있다. 오후에는 관광 겸 고소 적응을 위해 셰르파 박물관을 찾았다. 500여 년 전 티베트에서 이주했다는 셰르파족의 풍물을 전시한다. 그 옆에는 호텔이 있고 같은 건물의 한 부분에 히말라야 등반의 역사를 보여주는 포토갤러리가 있다. ▲ 똥바를 만드는 도구와 잔 ⓒ2006 강경원 박물관 내부에는 셰르파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각종 도구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가장 인상적인 것이 똥바(Thongba)를 제조하는 도구이었다. 똥바는 조를 이용하여 만드는 막걸리의 원액 같은 술이다. 발효된 좁쌀에 따뜻한 물을 부어 우려낸 물을 빨대로 빨아먹는 것이다. 이 술을 증류시킨 것이 순한 소주와 같은 락시(Raksi)이다. 어인 일인지 남제에서는 막걸리와 유사한 창(Chang 또는 Chheng)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창은 쌀이나 옥수수나 보리를 주원료로 한다. 사실상 고도가 높은 산간지대에서는 보리가 거의 주원료로 쓰인다. 박물관의 마당에는 탐 세르쿠 봉(6608m)과 아마 다블람을 배경으로 퇴색된 파고다가 서 있다. 그 옆에는 풍상으로 거의 해체가 된 헬리콥터의 잔해를 치우지 않은 채 군인들이 거의 하는 일도 없이 노닥거린다. 불편한 로지에서 또 악몽 같은 밤을 맞이해야 한다. 가이드 장보에게 푸념을 늘어 놓았다. 더 좋은 로지도 많은데 하필이면 여기서 이틀을 보내는 이유를 따지고자 하는 것이다. 장보는 안색의 변화도 없이 다른 곳에 가도 마찬가지라는 말로만 변명을 하였다. 하기야 여기서 무엇을 더 기대할 수 있겠는가? 까맣게 탄 얼굴의 수많은 주름을 보니 장보를 더 이상 나무라고 싶지 않았다. 44세인 그에게는 아들과 딸이 각각 한 명인데, 스무 한 살의 아들은 고향인 지리에서 어머니의 농사일을 돕고, 딸은 카트만두에서 장보와 기거한다. 장보는 가이드 일이 있을 때마다 장기간 집을 떠나므로 가족들이 함께 만나기란 여간 쉽지 않다고 한다. 그는 가이드를 하면서 일당 10달러 정도를 번다. 그나마 늘 일이 있는 것은 아니다. 더군다나 그는 사실상 가이드 자격증이 없으므로 금전상의 불이익이 많다. 그는 한국 등반대에서 요리사로 일을 하기 시작하면서 가이드 일을 익히게 되었다. 한국어를 더듬거리기는 하지만 의사소통은 가능하다. 그에 비한다면 포터인 제링은 이제 20세의 건장한 청년으로서 슬리퍼만 신고도 차가운 날씨 속에 잘도 걷는 유능한 일꾼이다. 게다가 포터의 자격을 넘는 수준의 영어구사력을 지녔으니 더할 나위 없이 도움이 되었다. 영어를 하는 포터는 그리 흔하지 않다. 그래서 나는 트레킹 도중에 장보에게 보다는 제링에게 더 의지할 수 있었다. 이 밤에도 개 짖는 소리와 까마귀 울음은 계속되었다. 밤에 구름이 잔뜩 끼었으나 아침에는 화창하게 갰다. 어제 올랐던 셰르파 박물관을 끼고 길은 가파른 경사면을 가로지른다. 길 아래로는 수백 미터나 되는 낭떠러지가 펼쳐지며 계곡의 물소리는 들릴 듯 말 듯한다. ▲ 물의 힘으로 돌아가는 마니 바퀴 ⓒ2006 강경원 컁주마(Kyang Juma)에 도착한 시각은 오전 10시 10분 경이었다. 워낙 여유 있게 걸으며 경치를 즐겨서 힘든 줄도 몰랐다. 여기는 산악 등반길의 교차점이다. 서쪽으로는 쿰중(Khumjung), 북쪽으로는 에베레스트로 가는 방향, 그 사이로는 고쿄리(Gokyo Ri)를 거쳐 초오유로 가는 길이 나있다. 리(Ri)는 셰르파어로 산봉우리 혹은 언덕을 말한다. 고쿄리로 향하는 길은 아득히 높은 절벽 위에 걸려 있는 것처럼 보인다. 내가 택한 길은 계곡 위에 걸려 있는 완만한 경사의 길이다. 산책길과도 같이 경사는 약하지만 고도가 3600미터를 넘으므로 숨쉬는 일이 편하지는 않다. 서서히 올랐다가 사정없이 아래로 경사진 길을 걸어 계곡에 도착한다. 이 곳 풍키 텡가(Phunki Thenga)에는 물이 철철 넘친다. 꼭 우리나라 설악산의 계곡과도 같은 이 곳에는 기도문이 적힌 마니 바퀴를 물레방아의 원리를 이용하여 돌리고 있다. 돌아갈 때마다 기도문을 암송하는 것을 의미하므로 물이 떨어지지 않는 한 기도는 영원히 계속되는 것이다. 규모가 큰 임자계곡은 급류를 이루므로 길은 능선을 하나 넘어가도록 나 있다. 500m나 되는 고개를 넘어야 하는 것이다. 오르는 길의 오른편에는 계곡 건너 우뚝 솟은 탐 세르쿠 봉만 시선을 끈다. 이 산은 1964년에 뉴질랜드 등반대가 초등하였다. 숨을 몰아쉬며 오른 곳은 텡보제(Tengboche·3860m)이었다. 구름 없는 맑은 날씨에 시경은 매우 좋았다. 자줏빛 건물의 수도원에는 수도승들은 우리 일행을 아랑곳하지 않고 무슨 일이 있는지 매우 서두르며 부산을 떨었다. 관심도 보여 주지 않은 채 우리 일행에 대해 불편해 하는 눈치이었다. ▲ 텡보제의 수도원 ⓒ2006 강경원 길은 다시 내리막이었다. 랄리구라스 나무가 울창한 숲을 지나지만 철쭉 종류인 네팔의 국화인 이 꽃은 아직 피지 않았다. 장보가 잘 아는 로지로 안내했지만 피곤함도 잊은 채 좀 더 좋은 로지를 찾자고 했다. 그리하여 데보제(Deboche·마을)에 도착했는데 한 무리의 한국 등반대가 내려 왔다. 초췌하고 그을린 얼굴에 하나 같이 검은 옷들만을 입고 있다. 아일랜드 피크(Island Peak·6189m)를 다녀오는 길이란다. 이곳 말로는 임자제(Imjache)인데 지명마저 영국인에게 빼앗겨 버린 것이 안쓰럽다. 아일랜드 피크는 독일어인 인젤베르크(Inselberg)라는 지형학적 개념으로 통용된다. 산악지대에 섬처럼 솟아있는 산봉우리를 말한다. 말하자면 분수령이 많이 침식되어 그 형체가 뚜렷하지 않아서 독립된 산지처럼 보이는 것이다. 이 산은 6천 미터급 산중에서는 비교적 접근하기가 용이해서 한국 산악인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그럼에도 오르기 위해서는 챙겨야할 장비는 어마어마 하고 준비를 꽤나 잘 해야 하는 산이다. ▲ 협곡 위의 산길 : 뒤는 왼쪽부터 에베레스트, 로체 샤르, 아마 다블람 ⓒ2006 강경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