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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왕자와 선재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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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적 느낌의 어린왕자가 진정한 친구를 찾아가는 여행을 통해  

마음의 눈 뜨는 법을 배워가는 과정이

화엄경 속 선재동자가 53 선지식 만나면서 성장하는 구도자의 전형적 모습이다

 

2000년 7월  29일은 <어린 왕자>를 쓴 생 텍쥐페리가 태어난 지 꼭 100년이 되는 날이다. 그의 고향인 프랑스 리옹 시가 공항 이름을 ‘생 텍쥐페리 공항’으로 정하는 등, 탄생 100주년을 맞아 전 세계적으로 추모 열기가 이어지고 있다.

생 텍쥐페리는 그의 나이 43살, 죽기 1년 전에 <어린 왕자>를 발표하였다. 국내에서 번역된 판본이 무려 92종에 이르는 이 동화책은 지금까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가장 폭넓은 독자층을 확보한 책 중의 하나로 꼽히고 있다. 한때 화가 지망생이었던 작가가 직접 그린, 이국적이면서도 순수하기 그지없는 어린 왕자의 얼굴은 그 모습 자체만으로도 우리에게 잔잔한 감동을 준다. 작가 자신이 항상 대화의 상대로 마음속에 품고 다녔다는 이 순수한 소년의 이미지는 작가의 분신이자 곧 우리 모두의 분신이다. <어린 왕자>가 이렇듯 한국인들에게 특별히 사랑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린 왕자>에는 다분히 동양적 감수성이 짙게 배어있다. 그 동양적 요소란, 한마디로, ‘마음(心)에 대한 통찰’이다. 이심전심의 세계에 익숙한 우리에게는 어린 왕자의 여행이야기는 그대로 선재동자의 구도 이야기와 겹쳐지면서 우리의 마음에 쉽게 다가오는 것이다.

팔만대장경 중에서 한국불교가 소의경전으로 삼는 것은 <화엄경>인데, 방대한 이 경전의 결론에 해당하는 마지막 부분인 ‘입법계품’은 난해한 이론이 아니라 선재라고 불리는 동자의 순례 이야기이다.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다니는 순례의 길 끝에 깨달음을 성취한다는 소년의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도 구도의 길에 동참할 수 있다는 희망과 불교의 진리에 쉽게 다가가는 길을 터 주었다.

그런데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생 텍쥐페리가 어린 왕자의 순례 이야기를 통해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사람들에게 전하고자한 의도와, A.D. 2-4세기경에 편찬한 것으로 보이는 <화엄경>의 편자가 결국 마지막에 가서 선재동자의 구도기를 통해 화엄사상을 요약해 보인 의도가 서로 일치한다는 점이다. 진리의 두 얼굴인 ‘빛’과 ‘힘’ 즉 지혜와 행동의 조화를 역설하고 그 중에서도 특히 후자의 중요성을 강조할 때에는, 그 본보기로서 ‘구도자의 순례’라는 주제를 실제 모델을 통해 제시하지 않을 수 없다.

<화엄경>이 이렇게 ‘행동’을 중시하는 이유가 있다. 이 경이 바로 초기 대승불교의 탄생을 합리화하는 배경이 되기 때문이다. 개인의 깨달음에 집착하는 장로 중심의 소승불교에 반발하여 개인보다는 전체, 소극적인 개인 수행보다는 적극적인 대사회적 실천을 주장하여 탄생한 대승불교는 ‘행동하는 보살’이라는 이상형을 내세웠고, 그 대표적인 인간형이 바로 자신의 성불 전에 다른 중생들을 먼저 성불시키겠다는 서원을 세운 보현보살이었다.

선재동자는 보현보살의 분신 같은 존재로 구도자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개인적인 구원보다는 사회 속의 연대를 강조하는 대승불교의 대표적 경전인 <화엄경>의 대단원이, 어린 선재동자가 53인의 선지식을 만나면서 성장해 마침내 정각을 이룬다는 순례 이야기로 그 막을 내리는 것은 필연적인 전개과정이면서도 매우 의미심장해 보인다.

‘행동의 작가’ 혹은 ‘실천의 인간’이라 불리던 생 텍쥐페리가 자신의 전 생애를 압축하여 생전의 마지막 작품으로 펴낸 <어린 왕자>의 이야기 구조가 묘하게도 선재동자 구도기와 일치하는 것은 흥미롭다. ‘행동’을 강조하는 작가로서는 결국 자신의 분신인 어린 왕자의 순례라는 서술구조 속에다 하고 싶은 말을 풀어낼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이 점은 <화엄경> 편자의 경우와 같다. 대승불교를 처음 주창하고 나선 사람들처럼, 생 텍쥐페리도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삶을 추구했다.

<어린 왕자>가 어딘지 동양적 느낌을 주는 것은 ‘마음’이란 주제가 그 이야기를 철저하게 관통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가 어린 왕자를 통해 우리에게 전해주고 싶었던 것은 ‘마음을 깨닫는 것’ 즉 ‘심안(心眼)을 뜨는 것’이다. 생 텍쥐페리가 불교를 잘 몰랐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 전반에 불교적인 예지가 번득이는 것은 그의 체험이 불교 수행자의 체험과 근본적으로 유사하기 때문이다.

어린 왕자와 선재동자는 모두 진리를 찾아 편력의 길을 떠나는데, 그들의 행위가 공통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인간은 만남으로 자란다’는 사실이다. 어린 왕자는 친구를 찾아 떠나고, 선재동자는 스승을 찾아 떠난다. 우주의 여러 행성을 여행하다 일곱 번째로 지구라는 별에 도착한 어린 왕자는 뱀과 여우로부터 마음의 눈을 뜨는 법을 배우고, 자기가 찾아다니던 진정한 친구는 고향에 두고 온 바로 그 장미라는 것을 깨닫는다. 어린 왕자는 지구에서 만나 가까워진 비행사에게 ‘자기가 무엇을 바라는 지도 모르고 살아가는 지구 사람들’에 대한 답답한 심정을 토로한다. 그리고는, ‘그들이 찾고 있는 것은 장미꽃 한 송이나 한 모금의 물 속에도 있을 텐데’ 하고 가르쳐준다.

이 대목은 <화엄경>의 핵심사상이며 선재동자가 기나긴 구도행각 끝에 깨달은 내용과 일치한다. 욕심에 가려진 마음의 거울을 닦아내 심안이 뜨이게 되면, 티끌 하나 속에도 전 우주가 들어있는 우주의 진상을 보게 된다는 것이 <화엄경>이 설하는 진리의 요체이다. 우주 전체가 무수히 많은 꽃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장엄한 큰 꽃이라는 ‘화엄’의 의미 그대로이다. 장미 한 송이나 물 한잔을 통해서도 우주의 비밀을 알 수 있다는 어린 왕자의 말은 화엄사상의 철학적 기본구조인 법계연기사상과 일치한다.

어린 왕자는 자기 별로 돌아가기 전 지구에서 정들었던 친구인 비행사와 마지막으로 헤어지면서 자기를 보고 싶으면 밤하늘의 별을 쳐다보라고 말한다. 그리고 저 많은 별들 중의 하나에서 친구가 웃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 다른 모든 별들도 함께 웃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 나와 관계가 있는 하나의 별을 통해 수많은 다른 별들의 웃음소리를 듣게 되고, 이어 서로 상응 공명하고 있는 전 우주의 음악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중중무진한 법계연기의 화엄사상을 상징하는 ‘월인천강(月印千江 동산에 달이 뜨니 강물마다 달이 비치리라)’이나 ‘해인(海印 바다의 잔물결마다 진리의 도장이 찍힌다)’ 같은 전통적인 표현에 덧붙여 생 텍쥐페리는 <어린 왕자>를 통하여 ‘우주에 가득 찬 모든 존재(별) 사이에 공명되는 웃음소리’라는 또 하나의 아름다운 화엄의 상징을 창조해 내었다. 이것은 선재동자가 깨달음을 통해 체험하는 우주의 화엄적 실상과 그대로 통한다.

<어린 왕자>의 우화와 선재 동자 이야기가 서로 유사한 것은, 그만큼 불교사상의 포용력이 넓고 보편적이라는 사실과 행동주의 작가 생 텍쥐페리의 사고력 역시 놀라운 깊이를 갖춘 것이라는 사실을 증거한다.

<어린 왕자>를 통해 우리의 순수한 자성(自性)과 법계의 화엄적 연기를 돌이켜보게 만들어준 생 텍쥐페리가 100년 전에 태어나 우리와 함께 20세기를 살다갔다는 인연을 고맙게 생각한다.    김홍근<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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