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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 불교의 소승과 대승 그리고 금강승

하얀연꽃

 

티베트 불교의 소승과 대승 그리고 금강승

 

뉴스&정보/티베트 알기 2013/11/26 07:30 |

 

수트라 : 환영을 거부하기

 

소승과 대승

 

유정들의 영적인 진화 단계와 필요에 맞춰서 부처는 다양한 가르침을 주었다. 팔만 사천 가지의 미망을 해결할 팔만 사천 가지의 가르침을 제시한 것이다. 이 모든 가르침을 머리로만 이해하려 한다면, 한 번의 생으로는 불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머리로 이해하는 동시에 전체적으로 깨닫는 것은 가능하다. 단 한 번의 생으로도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는 말이다.

 

깨달음에 이르는 단계적인 길인 람림을 예로 들어보자. 법(法)을 향한 세 가지 수행 동기에 맞게, 람림은 세 단계로 나뉘어 있다. 어떤 이들은 단순히 내생에서도 인간으로 태어나고 싶어서 수행을 한다. 그런가 하면 열반(涅槃)이라는 작은 해방을 위해 수행하는 이들도 있다. 이 두가지 차원의 동기를 지닌 수행자는 자신의 집착과 미망을 버리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부처는 이들에게 소승의 가르침을 주었다.

 

그러나 여기서 더 진보한 이들도 있따. 이들도 자신의 미망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자신만을 위해 미망을 근절하거나 빨리 해탈에 이르고자 하지는 않는다. 그 보다는 일체유정의 행복을 더 많이 생각한다. 이런 사람들을 위해 부처는 대승의 가르침을 주면서 보살의 길을 제시했다. 그리고 대승의 길을 가는 사람들 중에서도 좀더 지적이고 진보적이며 축복받은 사람들을 위해서 금강승의 비밀스런 가르침을 주었다. 이런 금강승 수행자들을 흔히 귀중한 보배 혹은 귀중한 제자들이라 부른다.

 

"나는 이 세 단계 중의 어느 하나에 해당한다. 그런데 스승께서는 왜 내게 그 하나의 가르침만 주지 않고 세 가지 단계를 다 가르치는 걸까?"이렇게 생각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어느 한 단계의 가르침만으로는 깨달음에 이를 수 없다. 세 단계의 가르침을 모두 흡수하고 지속적으로 실천해나가야 한다. 첫 단계를 완성하고 두 번째, 세번째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

 

깨달음의 길을 어떻게 부르든 부처의 모든 가르침은 소승(小乘 : 히나야나 : Hinayana)과 대승(大乘 : 마하야나 : Mahayana)으로 나눌 수 있다. '승(乘 : yana)'은 산스크리트어로 '수레'라는 의미이다. 예컨대 강을 건너고자 할 때 우리는 배를 탄다. 그러면 배는 우리를 강 건너로 실어다준다. 보리심이라는 대승적 마음가짐은 이 배와 같다. 이 배에 올라타면 우리는 자동적으로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

 

소승의 길에 적합한 사람들은 자기만의 목적을 위해 자신의 문제를 파악하고 자기실현의 경제 이르려 한다. 이런 태도에 의해 이들은 자기해방 혹은 열반에 도달한다.

 

 

2013년 11월 13일, 인도 뉴델리 '국립인드라간디예술센터'에서 남인도 대뿡사원 승려들이 제작한 모래 만달라를 보고 있는 티베트 정신적 지도자 14대 달라이 라마(왼쪽)  /사진 달라이 라마 공식 사이트

 

 

대승은 원인의 수레와 결과의 수레로 나눌 수 있다. 원인의 수레는 보살승을 말하는데, 흔히 현교승(顯敎乘 : 수트라야나 : Sutrayana)이라 부르기도 한다. 현교승에서는 보리심 함양과 육바라밀을 통한 점진적인 깨달음을 강조한다.

 

결과의 수레는 밀교승(密敎乘 : 탄트라야나 : Tantrayana)인 금강승을 말한다. 결과의 수레라 부르는 이유는 탄트라적인 방법으로 수행하는 요기나 요기니들의 수행의 결과인 깨달음의 경험을 현재 속으로 가져오기 때문이다. 깨달음에 대한 부처의 경험을 '바로 지금' 깨달음에 이르는 단계적인 길 속으로 끌어들이는 것이다.

 

관세음보살 구루 요가에 입문하고 나면 우리는 자신의 에너지와 의식을 관세음보살의 에너지와 의식으로 변형시킨다. 지금 바로 여기에서 관세음보살이 되는 것이다.

 

'불가능해! 나는 순수하지도 않고 미망에 사로잡혀 있어. 내가 어떻게 관세음보살이 될 수 있겠어?" 하고 생각하는 대신 일상적인 몸과 말, 생각을 관세음보살의 환희의 지혜로, 완전한 깨달음의 경험으로 변화시킨다. 이런 깨달음의 경험을 바로 지금 해탈에 이르는 길 속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

 

람림 명상이 어떻게 작용하는지는 우리의 내면에서 확인할 수 있다. 람림의 서두에서는 일상 행위들을 특히 강조한다. 내면의 온갖 쓰레기들이 보이기 시작하면 자신이 부정적인 본성 속에 휩싸여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고 흔히 절망 속으로 빠져든다. 그러나, 람림 수행을 계속하면 수수께끼 같은 자신의 에고와 갈등, 미망에서 벗어나 다른 살아있는 존재들에게도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한다. 우리 마음이 보다 우주적으로 넓게 열리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렇게 마음 자세가 바뀌면 내면의 수레도 달라진다.

 

간혹 소승(성문승·연각승)과 대승(보살승)과 금강승을 놓고 혼동하는 이들이 있다. 이런 이들은 흔히 금강승을 대승과 다른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은 틀린 생각이다. 보살승과 금강승 모두 대승에 포함되며 둘다 우리를 깨달음의 언덕으로 데려다준다. 지향하는 목적이 같은 것이다.  단지 서로 다른 단계의 수행자들을 위해 부처께서 다양한 방식을 제시한 결과로 다양한 방편이 존재하게 된 것일 뿐이다. 요컨대 보살승과 금강승 모두 우리를 깨달음으로 인도하지만 보살승은 점진적이고 금강승은 급진적이라는 점에서 서로 다르다. 우리를 깨달음의 언덕으로 가장 신속하게 인도해주는 것이 바로 금강승인 것이다.

 

소승과 보살승에서는 우리 모두가 망상과 업으로 인해 윤회의 굴레 속에 갇혀 있으므로 이 윤회의 사슬을 끊어야 한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금강승에서는 윤회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가 실재에 대한 우리 인식이 정묘파지 못하고 평범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보다 정묘한 시각을 키우고 우리 의식 속에 언제나 아름다움과 완벽함에 대한 비전을 간직하고 있으면, 우울이나 이기심이 일어날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수행을 통한 직접 체험이다. 머리로만 이해하는 차원에 머무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분명한 이해가 주는 이점

 

부처의 모든 수행법과 가르침을 분명히 이해하면 자신의 수행에 불안을 느끼지 않게 된다. 더불어 누구도 우리의 수행을 방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렇지 못할 때는 어느 정도 올바르게 이해하고 있어도 지력이 월등한 누군가가 나타나면 쉽게 마음이 흔들리고 믿음까지 잃게 될 수도 있다. 제대로 수행하고 있으면서도, '무언가 잘못하고 있는 게 분명해. 그가 나의 수행에 문제를 제기했는데도 난 제대로 대응할 수 없었어.' 이렇게 생각한다.

 

사실 지금과 같은 세상에서는 항상 이렇게 대응하기가 쉽지 않다. 어떤 교수가 다가와서 이렇게 묻는다 하자. '명상을 하고 계신다고요?" 그러고는  알아들을 수도 없는 용어들을 써가며 이런저런 철학들을 늘어놓기 시작한다. 그의 말을 이해할 수는 있어도 적절하게 종합해서 대응하기가 힘들다.

 

그 결과 자신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나마 하고 있던 명상마저도 포기해버리고 만다. "나는 가망이 없어. 할 수 없다고. 그 교수가 나를 제대로 본 거야."

 

누구나 이렇게 느낄 때가 있다. 그러므로 현교승의 길을 가는 사람이든 금강승의 방식을 따르는 사람이든, 람림을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하게 이해해야 한다. 그러면 장애 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수행에 전념할 수 있다.

 

부처는 제자들의 영적 수준에 맞게 서로 다른 가르침을 주었다. "나는 어떤 때는 '그렇다'. 또 어떤 때는 '아니다'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나의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나의 가르침을 너의 지혜로 분석할 줄 알아야 한다." 우리 자신의 지혜가 우리를 해탈로 인도해준다는 의미이다.      <출처- 아이러브 티베트 >

 

- 출처 : 달라이 라마의 자비 명상법 중에서 / 라마 예세 툽텐 해설 / 정신세계사 200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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