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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제국의 멸망을 불러온 티베트 불교

하얀연꽃

 

 

16세기 후반 분열되어 있던 몽골 소왕국 칸(khan, 王)들은 그들의 지도력 강화를 위해 경쟁적으로 불교를 받아들였다. 1578년 내몽골지역을 다스리던 알탄칸(Altan Khan)이 티베트불교의 황모파 수장이었던 소남 가초를 알현한 후 새로운 법을 만들면서 급속히 퍼지기 시작하였다.

 

새로운 법의 큰 특징으로, 그 때까지 시행되던 샤머니즘적 순장과 인신제물 풍습을 금지하여 여자나 동물을 죽이지 못하게 하고 옹고드(Ongon, 수호신을 형상화한 물건) 소지를 불법화하였으며, 대신 집집마다 라마교의 수호신인 여섯 팔의 마하칼리상을 모시도록 강제화시켰다.

                    

 

몇 년후 할흐몽골의 아브타이칸도 달라이 라마(알탄칸이 소남가초에게 하사한 호칭) 3세를 알현하면서 비슷한 수준의 정책을 실시하였고 옛 수도였던 하라호름의 잔해를 이용하여 최대규모의 에르덴조사원도 축조(증개축)하였다. 

 

(사진 : 에르덴조 Erdene-Zuu 사원. 100개의 스투파가 외벽 기둥역할을 하고 있다. 당시 16세였던 자나바자르가 티베트에서 귀국 직후 이곳을 근거지로 삼았다) 

 

이후 아브타이칸(Abtai Sain Khan)의 손자 자나바자르가 14살의 나이로 2년간 티베트로 불교유학을 가게되고(1649년) 거기서 달라이라마로부터 ‘젭춘담바 쿠툭투(Jebtsundamba Khutuktu)’라는 최고 권위의 이름을 하사받고 돌아왔다. 귀국직후 에르덴조 사원을 근거지로 하여 몽골의 제1대 법왕으로서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한다.

 

몽골역사에서 중요한 순서로 꼽으라면 칭기스칸 다음으로 호명되는 사람이 자나바자르(Zanabazar)인데, 징기스칸의 직계후손이며 제1대 법왕으로 불교, 예술, 과학, 문학, 언어학등에서 추종을 불허할 업적을 남긴 인물이다.

 

 (사진 : 자나바자르 불상. 자신의 모습을 형상화한 불상을 직접 제작하였다)

(출처 : http://masterpieces.asemus.museum/masterpieces.aspx?o=a9f50777-6a2c-4b83-b363-80ad940d70e2)

  

소욤보라고 불리는 문자를 창제하였고 큰 사원들을 곳곳에 세우면서 몽골 특유의 사원건축 양식을 창안했으며 세계 수준급으로 평가받는 탱화와 불상을 직접 제작하기도 하였다. 가축을 도축하는 새로운 방법을 고안함은 물론 모자와 옷입는 법등 수 많은 생활풍습을 만들어 보급하였으며 종족간 분쟁을 중재하고 귀족들과 국제정세를 비롯한 외교적 결정과 조약서명에도 참여 하였다. 칭기스칸 직계 후손이라는 출신과 법왕으로서의 지위 그리고 경탄할만한 능력으로 인해 몽골전역에서 절대적인 지지를 받은 인물이다.

 

그로 부터 시작된 몽골의 법왕 젭춘담바의 환생은 2012년 9대 젭춘담바가 울란바토르에서 칩거중 사망하며 최근까지 명맥이 이어졌다. 흥미로운 점은 몽골을 손에 넣은 청나라는 그들의 결속을 염려하여 3대 젭춘담바부터는 티베트에서 환생자를 찾도록 지시하였다는 것이다. 이후 3대부터 9대 모두 티베트출신들이 몽골의 법왕자리를 맡았다.

 

8대 젭춘담바의 경우 20세기 초 청나라가 망하자 독립을 적극 추진하였고 이에 호흥한 몽골국민들에 의해 내각을 만들고 황제의 지위에 올랐다. 몽골의 마지막 황제는 승려인 것이다.

 

(사진 : 젭춘담바 쿠툭투 8세. 티베트출신으로 몽골의 마지막 황제이다) 

 

법왕 자나바자르가 빌미가 되어 촉발된 준가르국과의 전쟁으로 인해 청나라를 불러들여 그들의 속국이 되었다가 200년후 8대 법왕의 주도로 독립을 이루었으니 불교가 몽골의 역사에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높다고 할 것이다.

 

1대 법왕 자나바자르의 이러한 능력과 활약은 서몽골지역 준가르국의 맹주 갈단칸(Galdan Khan)의 미움을 사서 큰 전란에 휩싸이게 된다. 갈단칸은 어릴때 티베트 달라이라마 밑에서 승려 수업을 받았기에 9살 위인 자나바자르와는 동일한 스승 밑에서 수학한 선배인 셈이다.

 

(사진 : 준가르국 갈단칸. 위구르와 카자흐스탄지역까지 장악하였고 칭기스칸의 영화를 재현하려한 강력한 유목국의 제왕이었다)

 

1680년대 당시 내몽골은 이미 청나라에 예속되었고 외몽골지역은 좌우로 나뉘어 동쪽은 할흐몽골이 서쪽은 준가르제국이 서로간의 복수전으로 지리한 싸움을 하고 있었다. 청나라 황제 강희제와 티베트의 달라이라마가 중재에 나서면서 1686년 양국의 주요 수반들이 모여 평화협정을 조인한 적이 있다.

 

그러나 2년 뒤 준가르 갈단칸은 대규모 군사를 일으켜 할흐몽골을 공격하였는데, 조인식 당시 자나바자르가 달라이라마 대리인과 같은 열에 배치된 것을 불경죄로 몰면서 침공의 명분으로 삼았다. 물론 직접적 이유는 그의 동생이 분쟁지역에서 사망한 것에 대한 보복이었지만  정신적 스승인 달라이라마의 권위에 도전하는 듯한 자나바자르에 대해 적개심이 폭발한 것이란게 더 정확한 표현이다. 나중에 청나라 강희제에게 보낸 서신에서 자나바자르를 벌하기 위해 침략하였으니 그들을 보호하지 말고 잡아들이라고 촉구한 것을 볼 때 이는 더 명확해진다.

 

필자가 잘 이해되지 않았던 것이 독실한 불교신자인 갈단칸이 하라호름의 에르덴조 사원을 공격해서 폐허로 만든 것이었는데 이는 자나바자르에 대한 적개심이 그만큼 컸다는 유력한 해석이 될 수 있다. 그들은 닥치는대로 할흐사람들을 죽였다.

 

이 살육을 피해 자나바자르를 포함한 수 많은 할흐몽골 사람들이 내몽골로 피신하면서 청나라에게 도움을 청한다. 그때까지 외몽골 사태를 관망하던 강희제가 비로소 군사를 일으켰고 갈단칸을 패퇴시킴으로서 1696년 몽골전체를 그들의 제국에 편입시킬 수 있었다. 

 

(사진 : 청나라 4대 황제 강희제. 1696년 8만의 군사를 이끌고 최대의 걸림돌이었던 준가르국을 정벌함으로써  몽골과 위구르지역을 완전 복속시켰다)

 

위구르와 카자흐스탄지역 일대까지 장악한 유목국가 준가르가 멸망한 일차적 원인은 그들간의 권력다툼으로 인한 내분이다. 그러나 이 기간동안 티베트 불교가 중요한 역할을 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들간의 분쟁이 일어날 때 중재에 나서기도 하고 한쪽의 손을 들어주기도 하면서 싸움을 부추이기도 하는 등 양면성을 보였는데, 마땅한 군사력이 없던 티베트 불교정권과 종파들은 이를 보충해 줄 수 있는 수단으로 몽골을 이용한 측면이 분명히 있다.

 

자나바자르와 갈단칸은 비슷한 시기에 티베트 달라이라마의 수제자였고 뛰어난 능력과 자만심의 소유자였던 자나바자르에 대해 갈단칸은 예전부터 질투와 적개심을 가지고 있었다. 청나라에 대한 고려없이 동생에 대한 복수와 결부되어 시작된 침략으로 인해 결국 멸망에 이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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