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는 죽음을 테마로 삼고 있지만 궁극적으론 삶을 이야기한다.  “삶은 죽음이 있기 때문에 비로소 완성되는 인간의 가장 위대한 목적이다. 죽음의 본질을 이해하면 가치 있는 인생을 살 수 있다”고 역설한다. 그의 표현처럼 죽음에 관한 책이자 삶에 관한 책이며 동시에 철학에 관한 책이다. 그는 이 책을 통해 누구나 피할 수 없는 죽음을 직시함으로써 잠시 머물다 사라지는 우리 삶이 얼마나 축복인지, 어떻게 해야 진짜 잘 사는 것인지를 역설적으로 깨닫게 해준다.

 

죽음 후엔 영혼도 영생도 없다

 

셸리 케이건 예일대 교수는  ‘교탁 위의 철학자’로 불린다. 늘 교탁 위에 올라앉아 책상다리를 한 채 강의한다고 해서 붙인 애칭이다. 몇 달 전 한국에 와서 강연할 때도 그랬다. 그는 죽음이라는 다소 무거운 주제를 토크쇼 사회자 같은 입담과 유머감각으로 풀어내 인기를 끌었다. 고대에서 현대까지 방대한 철학사를 다루면서도 난해한 철학용어를 거의 사용하지 않아 ‘대중철학 강의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그의 책 《죽음이란 무엇인가》는 1995년부터 예일대에서 진행해온 교양철학 정규강좌를 새롭게 구성한 것이다. 그는 이 책에서 ‘죽은 다음에도 나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 ‘죽음은 나쁜 것인가’ ‘영생은 가능한가’ 등의 질문을 통해 인간의 실체를 밝혀낸다.

 

먼저 영혼의 존재에 대해서는 인간이 육체와 영혼으로 이뤄져 있다는 이원론(dualism)과 인간이 육체로만 이뤄져 있다는 물리주의(physicalism)의 관점에서 설명한다.

 

그는 플라톤의 대화편 중 소크라테스의 죽음과 영혼의 불멸을 다룬 ‘파이돈’을 소개한 뒤 이를 하나하나 뒤집고 반박한다. 또 ‘인간의 자유의지(free will)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영혼의 존재를 믿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영혼의 존재를 상정하지 않고도 자유의지를 설명할 수 있다는 논증을 제시하면서 “이원론자들의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말한다.

 

‘삶이 끝난 후에도 삶은 계속되는가’라는 질문은 ‘육체적 죽음 뒤에도 영혼은 살아남는가’와 맞닿는다. 플라톤은 물질적이고 감각적인 세계와 대비되는 비물질적이고 초월적이며 보편적인 실재, 즉 이데아(idea)를 통해 영혼불멸론을 주장했다. 플라톤에 따르면 절대적인 정의나 선, 아름다움 등은 우리가 사는 이 세계가 아닌 이데아에 존재하는 것들이다. 우리는 이성을 통해 이데아를 인식할 수 있으므로 이성은 비물질적이고 영원한 존재다. 따라서 영혼은 영원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죽음이 앗아가는 것들

 

과연 그럴까. 그는 웃음 현상을 예로 들며 얘기를 이어간다. 웃음은 입술을 벌린 채 치아를 드러내는 행위지만 육체의 일부는 아니다. 이런 웃음이 플라톤의 이데아처럼 육체와 따로 떨어진 어디에 존재한다고 보는 것이 이원론자다.

 

이와 달리 일원적 물리주의자는 정신이나 영혼도 고도의 육체적 작용의 연장이라고 본다. 그러니 이들에게 육체 없는 웃음이라는 비물질적 존재는 따로 없다. 영혼도 마찬가지란 것이다.

 

그런 점에서 그는 물리주의자다. 그래서 영혼은 따로 존재하지 않으며 인간은 기계에 불과하다고 본다. 물론 그냥 기계가 아니라 아주 복잡하고 고도의 사고와 사랑까지 할 수 있는 특별한 기계다. 기계가 고장나 작동을 멈추는 게 죽음이다. 그러면 영혼도 사라진다. 영혼이 따로 없으니 영생도 있을 수 없다. 이런 얘기를 들으면 그가 유대교도라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다시 죽음은 나쁜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돌아가보자. 죽음이 나쁘다면 무엇 때문에 그런가. 그는 오랫동안 이어져온 철학적 주장들을 두루 열거한 다음 ‘삶이 가져다주는 좋은 것들을 앗아가기 때문에 나쁘다’는 박탈이론을 죽음이 나쁜 유일한 근거로 제시한다.

 

또 ‘나쁘다는 것은 존재하는 대상에게만 가능한 평가인데 죽고 나면 나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죽음은 나쁜 게 아니다’라는 에피쿠로스의 입장과 ‘죽음이 나쁘려면 마찬가지로 비존재 상태인 태어나기도 전의 상태도 나빠야 한다’는 루크레티우스의 비판을 통해 박탈이론을 옹호한다.

 

죽음을 나쁜 것으로 보게 만드는 네 가지 특성에 대해서도 알아본다. ‘반드시 죽는다’는 죽음의 필연성, ‘얼마나 살지 모른다’는 죽음의 가변성,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예측불가능성, ‘어디서 어떻게 죽을지 모른다’는 편재성이 그것이다.

 

그는 “죽음은 반드시 삶을 영위하고 난 다음에 맞이한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대상은 삶 자체나 죽음 자체가 아니라 태어나서 죽기까지의 과정”이라고 역설한다. 아울러 삶과 죽음은 긍정적·부정적 상호효과를 모두 갖고 있으며 우리가 부정적 상호효과만을 받아들일 때 삶은 나쁜 것이 돼버린다고 지적한다.

 

무한한 삶은 어떤 고통보다 가혹한 형벌

 

죽음이 공포의 대상인지도 따져본다. 그는 공포라는 감정을 일으키는 모든 조건을 분석한 뒤 죽음은 공포의 대상이 아니며 공포가 죽음에 대한 정당한 감정도 아니라고 얘기한다.

 

그리고 “적절치 못한 감정으로 인생을 허비할 까닭이 없으며, 우리에게 그리 많은 시간이 주어져 있지 않기에 최대한 많은 축복을 누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영원한 삶은 과연 좋은 것인가에 대해서도 얘기한다. 그는 천국이나 극락처럼 영원히 행복한 삶도 막연히 ‘좋은 것’으로만 주입됐을 뿐 세부적으로 묘사하면 전혀 다른 그림이 나올 것이라고 말한다. 어떤 형태의 삶도 영원히 지속되면 매력을 잃게 된다는 것이다. 또 “무한한 삶은 어떤 고통보다 가혹한 형벌”이라면서 모든 좋은 것들은 그것이 유한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환기한다.

 

결국 그의 논의는 행복의 본질에 관한 주제로 옮겨간다. 무엇이 우리의 삶을 가치 있는 것으로 만들어주는가. 그는 이와 관련한 대표적 철학이론인 쾌락주의(hedonism)와 로버트 노직의 사고실험인 ‘경험 기계’를 예로 들고는 쾌락이 본질적인 행복이 아니라고 말한다.

 

 

삶, 죽음이 있기 때문에 완성되는 인간의 가장 위대한 목적

 

“우리가 원하는 최고의 경험들을 데이터 파일로 내려받아 마음대로 해볼 수 있다고 하자. 밤을 새우며 위대한 소설을 쓰는 경험을 선택할 수도 있고 실험실에서 획기적인 암 치료법을 개발하는 경험을 선택할 수도 있다. 환상적인 석양을 감상하거나 이국적인 곳을 여행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경험 기계 속의 인생이지 내 인생이 아니다.”

 

이런 사례들을 통해 그는 “삶의 가치는 그 속에 채워지는 내용물에 달려 있다”고 강조한다. 그 속에 채워지는 좋은 것과 나쁜 것의 총합을 통해 삶의 가치를 평가하는, 이른바 ‘그릇이론’도 소개한다.

 

사실 그는 죽음을 테마로 삼고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삶을 이야기한다. 죽음이 없는 삶은 없으며, 삶이 없는 죽음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가 “삶은 죽음이 있기 때문에 비로소 완성되는 인간의 가장 위대한 목적”이다. “죽음의 본질을 이해하면 가치 있는 인생을 살 수 있다”고 역설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책은 그의 표현처럼 죽음에 관한 책이자 삶에 관한 책이며 동시에 철학에 관한 책이다. 그는 이 책을 통해 누구나 피할 수 없는 죽음을 직시함으로써 잠시 머물다 사라지는 우리 삶이 얼마나 축복인지, 어떻게 해야 진짜 잘 사는 것인지를 역설적으로 깨닫게 해준다.

 

 죽음이란 무엇인가 /셸리 케이건 지음 /박세연 옮김 /엘도라도 펴냄

고두현<한국경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