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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에게는 아내가 있었을까.

하얀연꽃

 

예수에게 아내가 있었을까


 
         예수에게는 아내가 있었을까.      
 
 

 일종의 ‘뇌관’이다. 터지면 엄청난 폭풍이 몰아친다. “그리스도교를 떠받치는 기둥이 무너질 것”이라고 우려하는 이들도 있다. 신의 아들이 인간과 결혼하고, 또 자식까지 둔다면 말이다. 기존의 신학적 체계가 흔들릴 수도 있다. 비단 최근의 일만은 아니다. 그리스도교 역사에는 ‘예수의 출생’에 대한 해묵은 논쟁이 있다.      
 
 
 2세기 인물인 희랍철학자 켈수스는 자신의 반기독교 저서 『참된 가르침』(178년경)에서 ‘예수는 로마 군인 판테라(Phantera)와 마리아의 사생아’라고 주장했다. ‘예수는 어느 유대인 마을에서 가난한 시골 여자로부터 태어났다. 목수인 남편은 그 여자를 데리고 고향을 떠났다. 한동안 떠돌다가 불명예스럽게 아이를 낳았다. 사생아였다. 그리고 이집트로 건너갔다. 가난했기 때문에 거기서 하인 생활을 했다.’ 3세기의 그리스도교 신학자 오리겐은 켈수스의 주장을 비판했다. 『켈수스에 반하여』를 통해 그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이처럼 초대교회 때는 ‘예수의 출생’을 둘러싼 공방이 있었다.      
 
 기사 이미지사진 크게보기 렘브란트의 작품 ‘이집트로의 피신’. 네덜란드 시골 농부의 복장을 하고 있는 요셉과 담요를 두르고 있는 마리아와 아기 예수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2006년에도 시끄러웠다. 댄 브라운의 소설 『다빈치 코드』가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됐다. 이번에는 ‘예수의 아내’가 도마 위에 올랐다. 예수에게 아내도 있고, 자식도 있다는 설정이다. 영화로도 제작됐다. 개봉을 반대하며 기독교계는 거세게 반발했다. 2012년 9월에도 ‘뇌관’이 등장했다.      
 
 
  미국 하버드대 신학대학원 캐런 킹 교수가 파피루스 조각 하나를 공개했다. 손바닥보다 작은 크기였다. 3.8㎝×7.6㎝. 이 파피루스에는 콥트어가 적혀 있었다. 고대 이집트 언어 계열인 콥트어는 3세기경부터 그리스도교도에 의해 널리 쓰여졌다. 16세기까지도 이집트 콥트 교회 신도들은 콥트어를 일상어로 사용했다. 콥트어는 이집트의 고대 상형문자를 푸는데도 중요한 ‘열쇠’ 역할을 한다. 17세기에 들어서면서 아랍어에 밀려 거의 사어(死語)가 됐다.      
 
   기사 이미지사진 크게보기 캐런 킹 교수가 파피루스 조각을 들고 있다.
 
 
        파피루스에 기록된 것은 콥트어였다. 앞면에 8줄, 뒷면에 6줄이다. 뒷면의 글자는 너덜너덜해져서 해독이 불가능하다. 앞면에는 ‘마리아’라는 이름이 등장했다. 문제가 된 대목은 두 곳이다. “예수가 그들에게… 나의 아내…라고 말했다.” “그녀는 내 제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마리아는 그럴 만하다.” 단어들 사이의 ‘…’부분은 글자가 지워져 해독할 수가 없다. 그래도 ‘예수’가 등장하고, ‘마리아’란 여성이 등장하고, 예수가 말한 것으로 보이는 ‘나의 아내’가 등장한다. 또 “그녀는 내 제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마리아는 그럴 만하다”는 구절까지 있다. 파장은 컸다. 전세계 언론이 달려들어 조각난 일명 ‘예수의 아내 복음서’를 일제히 보도했다.        
 
 
예수의 제자 그룹에는 12사도가 있다. 그렇다고 남자들만 예수를 좇아다닌 건 아니었다. 여자들도 있었다. 그중에는 막달라 출신 여성도 한 명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마리아’였다. 사람들은 그녀를 ‘막달라 마리아’라고 불렀다. 나사렛 출신의 예수를 ‘나사렛 예수’라고 불렀던 것처럼 말이다. ‘예수의 아내’에 대한 외혹이 제기될 때마다 등장하는 상대 여성이 바로 ‘막달라 마리아’다. 성서에는 그녀의 출신과 배경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다.          
 
2000년 전 갈릴리 호수의 서쪽 해안에 마을이 하나 있었다. 동네 이름이 ‘막달라(Magdala)’였다. 탈무드에서는 이 지역을 ‘막달라 누나이야 (Magdala Nunayya)’라고 불렀다. 막달라의 그리스어 지명은 ‘다리크아에(Tarichaea)’다. ‘생선제염소’란 뜻이다. 당시 막달라에는 어부들이 잡은 생선을 절이는 커다란 제염소가 있었을 터이다. 막달라는 갈릴리 어업의 중심이 되는 어촌이었다. 갈릴리호 서쪽편에 지금은 그런 마을이 없다. 막달라는 호텔과 리조트가 들어서 있는 티베리아스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지금은 그 자리에 갈대와 풀들만 무성하다.      
 
기사 이미지사진 크게보기 갈릴리 호수의 서쪽 해안. 예수 당시에 있던 막달라라는 마을의 흔적은 없다.        
 
예수 당시 이스라엘은 남성 중심의 철저한 가부장제 사회였다. 결혼하지 않은 여성은 전적으로 아버지의 뜻을 따라야 했다. 또 결혼한 후에는 남편의 뜻을 좇아야 했다. 미혼 여성은 혼자서 밖으로 다닐 수도 없었다. 가족이나 친척 등 신변을 보호하는 이가 있어야만 집 밖으로 나갈 수가 있었다. 미혼 여성이 임신이라도 하면 “가문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명예 회복’을 위해 가족이 돌로 때려죽이는 시대였으니 말이다.        
 
  유대교 회당에서도 그랬다. 예수 당시 랍비는 회당에서 ‘모세 오경’을 읽어 주었다. 여성들은 랍비가 되는 공부를 할 수가 없었다. 여성이 남성을 가르치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시대였다. 남자와 여자는 앉는 좌석이 분리돼 있었다. 지금도 예루살렘 ‘통곡의 벽’에는 유대인 남성과 여성의 기도 공간이 분리돼 있다. 그러니 2000년 전에는 오죽했을까.      
 
 기사 이미지사진 크게보기 예루살렘 통곡의 벽. 유대인 남성과 여성의 기도 공간이 분리돼 있다. 사진은 여성들의 기도하는 구역이다. 최근에는 중간에 남녀가 함께 기도할 수 있는 공간 조성에 대한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그럼에도 미혼인 막달라 마리아는 자유롭게 예수의 행적을 좇아다닌 것으로 보인다. 파피루스 조각에는 “그녀는 나의 제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마리아는 그럴 만하다”고 적혀 있다. 사도들이 먼저 이렇게 물었을 터이다. “마리아는 여자입니다. 여자도 주님의 제자가 될 수 있습니까? 여자도 사도가 될 수 있습니까? 사도가 돼서 다른 사람을 가르칠 수 있습니까?” 그렇게 물었을 터이다. 파피루스의 글은 여기에 대한 예수의 답으로 보인다. 예수는 “된다”고 했다.          
 
 
2000년 전 이스라엘에서 ‘마리아’는 상당히 흔한 이름이었다. 신약성서에도 여러 명의 ‘마리아’가 등장한다. ‘예수’라는 이름도 마찬가지다. 당시 ‘예수’는 우리나라에서 ‘철수’만큼이나 흔한 이름이었다고 한다. 플라비우스 요세푸스의 유대역사서에도 ‘예수’란 이름을 가진 여러 명의 예수가 등장한다. 그래서 고향을 이름 앞에 붙여서 ‘나사렛 예수’라 부르며 구분했던 것은 아닐까.    
 
 
     캐런 킹 교수가 내놓은 ‘예수의 아내 복음서’ 파피루스 문구를 반박하는 신학자들도 많다. 그들은 “당시 ‘예수’는 흔한 이름이었다. 파피루스에서 언급하는 ‘예수’가 우리가 생각하는 신약성서 속의 ‘예수’라는 결정적 증거는 없다. 문제가 되는 예수가 유대교의 어느 랍비의 이름일 수도 있고, 그의 아내 이름이 마리아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기사 이미지 캐런 킹 교수가 유리 속에 끼운 파피루스 조각을 들어 보이고 있다.
 
 
        그럼 신약성서에 ‘마리아’는 어떻게 기록돼 있을까. 누가복음에는 ‘막달라 마리아’란 이름이 등장한다. 예수가 여러 고을을 다니며 메시지를 전할 때 12사도가 함께 다녔다. 그때 여자들 몇 명도 함께 했다고 돼 있다. ‘악령과 병에 시달리다 낫게 된 몇몇 여자도 그들과 함께 있었는데, 일곱 마귀가 떨어져 나간 막달라라고 하는 마리아, 헤로데의 집사 쿠자스의 아내 요안나, 수산나였다.’(누가복음 8장3절)      
 
 
   ‘막달라 마리아’가 제자 그룹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얼마나 됐을까. 예루살렘의 골고다 언덕에서 예수가 십자가형을 당할 때 제자들은 현장에 없었다. 사도 요한만이 자리를 지켰고, 다들 도망쳤다. 베드로는 예수를 세 번이나 부인한 뒤에 달아났다. 그때 막달라 마리아는 골고다 언덕에 있었다. 거기서 ‘예수의 최후’를 끝까지 지켜봤다. 뿐만 아니다. 예수의 죽음 후에 무덤을 처음 찾아간 세 명의 여성(막달라 마리아, 요안나,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 중 하나였다. ‘예수의 부활’을 확인하고 사도들에게 알린 것도 그녀였다. 그러니 제자 그룹에서도 막달라 마리아는 주요 인물이 아니었을까.      
 
 기사 이미지 렘브란트의 작품. 요한복음에는 무덤에서 부활한 예수를 막달라 마리아가 가장 먼저 만났다고 기록돼 있다. 그녀도 처음에는 부활한 예수를 몰라 봤다.        
 
  인류학자인 미국 캘리포니아 산타바바라 필딩 대학원 장 피에르 이즈부츠 교수는 『예수의 발자취(In the footsteps of Jesus)』에서 사도 그룹 안에서 막달라 마리아의 비중이 작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4복음서를 정경(正經)으로 택할 때 영지주의 문헌들은 괄호 밖으로 밀려났다. ‘외경(外經)’이나 ‘위경(僞經)’으로 분류되는 영지주의 문헌에도 ‘마리아’가 등장한다. 『빌립의 복음서』에는 12사도가 예수에게 따지는 대목이 나온다. 제자들이 “어째서 우리 모두보다 저 여자를 더 사랑하십니까?”라고 묻자 예수는 “저 여자만큼 너희를 사랑하지 않을 리 있느냐?”라고 답한다. 2세기 초에 작성된 영지주의 문헌 『마리아 복음서』에는 마리아가 예수의 메시지를 깊이 이해하고 있었음을 암시하는 대목이 있다. 베드로는 마리아에게 이렇게 묻는다. “당신은 알지만 우리는 모르는 당신이 기억하는 구세주의 말을 이야기해 달라.”
 
      기사 이미지 15세기에 활동한 이탈리아 조각가 도나텔로의 작품‘막달라 마리아’. 피렌체 두오모 박물관 소장.      
 
   소설 『다빈치 코드』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갔다. 예수와 막달라 마리아, 둘은 결혼했고 아이까지 있다고 썼다. 비록 소설이지만 ‘예수의 아내’‘예수의 자식’이란 설정은 큰 이슈가 됐다. 소설은 2006년 당시 세계적으로 4300만부 이상 팔렸다. 나는 그때 『다빈치 코드』에 등장하는 주요 현장들을 직접 찾아갈 기회가 있었다. 프랑스 관광청과 영국 관광청이 ‘다빈치 루트’를 조성해 관광 코스로 개발해 놓은 참이었다. 소설의 주요 배경인 프랑스와 영국이 주무대였다.        
 
 
  독특한 경험이었다. 역사와 신화, 사실과 허구, 신과 인간 사이에 흐르는 물살을 거슬러 시원(始原)을 찾아가는 ‘연어’라도 된 기분이랄까. 현장에서 만난 ‘다빈치 코드’는 신약성서와 꽤 달랐다. 프랑스 파리의 생 쉴피스 성당측은 ‘이교도 사원이 있던 터에 성당을 세웠다’는 소설 대목 때문에 무척 화가 나 있었다. 생 쉴피스 성당에서 20분 걸으면 루브르 박물관이 나왔다. 입구의 거대한 유리 피라미드의 유리창 수가 소설에는 666개로 나온다. 악마의 숫자다. 실제는 달랐다. 673개였다.      
 
 기사 이미지 프랑스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 입구에 유리 피라미드가 있다.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는 대목도 있었다. 프랑스인 가이드 소피는 1891년에 있었던 실화를 하나 들려주었다. “프랑스 남부 랑그독루시옹 지방에는 예수 당시 세 명의 마리아가 배를 타고 건너왔다는 전승이 있다.”        
 
 
  소설에서는 세 명의 마리아를 ‘성모 마리아, 막달라 마리아, 예수의 딸 마리아’로 봤다. 소피는 “실제 랑그독루시옹의 성당 신부가 오래된 서류를 발견했다. 신부는 그걸 들고 파리의 생 쉴피스 성당을 찾아갔다. 서류를 전한 신부는 막대한 돈을 받았다고 한다. 그런데 서류의 내용과 소재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예수와 막달라 마리아의 관계에 대한 서류란 이야기만 전해질 뿐이다.      
 
 
   프랑스에선 현재 이 서류에 대한 책과 논문이 200편 이상 출판돼 있다.” 서류를 들고 생 쉴피스 성당을 찾아온 신부의 실제 이름은 ‘소니에르’였다. 소설에서는 루브르 박물관장의 이름이 소니에르로 나온다. 영국에서는 템플기사단이 1185년에 세운 런던의 템플 교회, 링컨 성당, 실제 ‘성배가 묻혔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스코틀랜드의 로슬린 성당 등을 찾아갔다. 이처럼 소설과 현장 사이에는 크고 작은 ‘틈’이 있었다.    
 
   기사 이미지 프랑스 파리의 생 쉴피스 성당.
 
 
        캐런 킹 교수의 파피루스 조각에도 찬반이 쏟아졌다. 첫 발표 후에 하버드대와 매사추세츠공대(MIT), 컬럼비아대의 고문서 전문가들이 달라붙었다. 탄소 연대 측정 등을 거친 2년 후에 이들은 “659년에서 859년 사이에 쓰인 것으로 보인다”며 과학적으로 진품임을 발표했다. 곧이어 거센 반박이 나왔다. 영국 케임브리지대가 출간하는 성서학 권위지 ‘신약학(New Testment Studies)’에는 “파피루스는 오래됐지만, 잉크는 아니다. 고대 잉크 성분을 함유한 위조품”이라고 주장하는 6편의 논문과 사설이 실렸다. “위조로 판명난 적이 있는 요한복음 조각과 필체가 똑같다. 이 파피루스도 위조다”라는 주장도 덧붙여졌다. 한쪽에선 “위조로 결론났다”고 말하고, 반대쪽에선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맞선다.      
 
 
   사람들은 따진다. 예수가 신의 아들인가, 아니면 사람의 아들인가. 예수는 젊은 혈기의 남성이 아니었나. 그에게도 여자가 있었을까. 예수는 100% 인간이자, 100% 신이라고 하지 않나. 인간이라면 이성에 대한 감정이 없을 수가 있을까. 어쩌면 결혼도 하지 않았을까. ‘예수의 아내’는 아예 존재할 수 없는 단어인가. 아내가 있었다면 자식도 있었겠지. 아들일까, 딸일까. 그럼 자식은 어떻게 봐야 하나. 그는 인간일까, 아니면 신일까. 그럼 그리스도교 신학은 괜찮은 걸까. 신학적 체계가 무너지는 건 아닐까. 아예 처음부터 다시 써야 하는 건 아닐까.  
 
 
     엘 그리코의 작품 ‘회개하는 막달라’. 캔자스시티 넬슨갤러리 소장.
 
 
        ‘예수의 출생’‘예수의 아내’‘예수의 자식’. 그리스도교에서 불경시되는 말이다. 그만큼 폭발력도 크다. 선정적으로 흐를 위험성도 다분하다. 나는 궁금하다. 왜 우리는 예수의 출생과 아내와 자식에 지대한 관심을 갖는 걸까. 왜 거기에 눈길을 꽂고, 왜 그런 말에 불쾌해 하는 걸까. 그건 우리가 ‘예수의 겉모습’만 알기 때문이 아닐까. 켈수스의 공격도 그렇고, 다빈치 코드의 설정도 그렇고, 파피루스 조각에 등장하는 ‘예수의 아내’도 그렇다. 하나같이 ‘예수의 겉모습’을 겨냥한다.        
 
 
  그럼 우리가 믿는 예수는 누구일까. “예수를 믿는다”고 할 때 우리는 예수의 무엇을 믿는 걸까. 그건 총각 예수일까, 아니면 유부남 예수일까. 그건 무자식 예수일까, 아니면 유자식 예수일까. 예수의 제자들도 몰랐다. 십자가에서 예수가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도 12사도는 ‘예수의 주인공’을 몰랐다. 우리도 마찬가지 아닐까. 2000년이란 세월이 흐른 지금도 우리는 ‘예수의 겉모습’만 붙들고 있는 건 아닐까.        
 
 기사 이미지사진 크게보기 나사렛의 수태고지 교회에 있는 조각상. 요셉과 성모 마리아, 그리고 어린 예수가 새겨져 있다.  
 
 
       빌립보가 예수에게 물었다. “주님, 저희가 아버지를 뵙게 해 주십시오.” 예수는 이렇게 답했다. “빌립보야, 내가 이토록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지냈는데도, 너는 나를 모른다는 말이냐?” 2000년 전의 빌립보는 알고 있었을 터이다. 지금 우리가 궁금해 하는 것들. 예수에게 아내가 있는지, 예수에게 자식이 있는지,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와 어떤 관계인지 말이다. 빌립보는 그걸 모두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예수는 말했다. “너는 나를 모른다는 말이냐?”    
 
 
     예수의 출생, 예수의 아내, 예수의 자식을 안다고 해서 ‘예수’를 아는 걸까. 또 그걸 모른다고 해서 ‘예수’를 모르는 걸까. 만약 그 모두를 안다고 하더라도 예수는 똑같은 물음을 던지지 않을까. 우리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이렇게 말하지 않을까. “너는 나를 모른다는 말이냐?” 빌립보의 물음에 예수는 이어서 답했다. “나를 본 사람은 아버지를 뵌 것이다. 그런데 너는 어찌하여 ‘저희가 아버지를 뵙게 해주십시오’ 하느냐?”(요한복음 14장9절)      
 
 
 기사 이미지사진 크게보기 수태고지 교회의 창에 그려진 스테인드 글라스는 무척 아름다웠다. 해질 녁 빛이 비스듬하게 들어올 때는 더욱 그랬다.
 
 
        예수가 말한 ‘나’는 뭘까. 왜 ‘나’를 본 사람은 아버지를 본 것이라고 했을까. 예수가 말한 ‘나’는 겉모습이 아니다. 총각 예수도, 유부남 예수도 아니다. 육신은 그릇일 뿐이다. ‘예수의 주인공’을 담는 일종의 그릇이다. 예수가 말한 ‘나’는 그런 껍질이 아니다. 그러니 예수를 보려면 ‘그릇’만 봐선 안 된다. ‘그릇 안’을 봐야 한다.    
 
 
      그 안에 무엇이 담겨 있을까. 이 물음에 예수가 직접 답을 했다. “나를 본 사람은 아버지를 뵌 것이다.” 그러니 그릇 안에 ‘아버지’가 담겨 있다. 그 아버지의 속성이 신의 속성이다. 예수는 다시 말한다.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있다고 한 말을 믿어라.”(요한복음 14장11절) 내 안에 ‘신의 속성’이 있고, ‘신의 속성’ 안에 내가 있다. 그 말을 믿어라. 그 말이 진실이니까. 예수는 그렇게 말했다.      
 
 
 기사 이미지사진 크게보기 어린 예수에게 요셉이 목수일을 가르치고 있다. 당시에는 아버지의 일을 아들이 물려받는 게 전통이었다. 나사렛 성요셉 교회의 벽에 걸려 있는 그림이다.  
 
 
      그러니 상관 없는 일이다. 예수가 총각이든, 유부남이든 말이다. 우리가 거해야 할 곳은 ‘예수의 겉모습’이 아니라 ‘예수의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예수의 형상’이 아니라 ‘예수의 본질’인 까닭이다. 예수는 말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요한복음 14장6절) 그렇다. 예수의 겉모습을 통해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가 없다. 예수의 주인공을 통할 때 비로소 아버지께 갈 수 있다. 거기에 길이 있고, 진리가 있고, 생명이 있다. 예수는 그렇게 역설하고, 역설하고, 또 역설했다.    
 
 
   그래도 우리는 따진다. 2000년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예수에게 아내가 있었을까. 그녀의 이름이 막달라 마리아였을까. 그렇게 묻고, 그렇게 따진다. 그런 우리를 향해 예수는 다시 말한다. “너는 아직도 나를 모르느냐?”    
 
 
      백성호 기자 vangog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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