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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이라마와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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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상] 달라이 라마와 중국 
이선민 논설위원 smlee@chosun.com
입력 : 2008.04.27 2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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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년 9월 열아홉 살의 젊은 티베트 지도자 달라이 라마베이징으로 갔다. 그는 제1차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부(副)상무위원장으로 선출된 뒤 중국 각지를 둘러봤다. 마오쩌둥과 저우언라이, 류사오치(劉少奇) 등 중국 지도자들도 만났다.

마오는 달라이 라마와 모두 열두 차례나 만나 중국이 티베트의 자유를 빼앗을 생각이 없다고 다짐했다. 이듬해 6월 달라이 라마는 티베트의 미래를 낙관하며 라싸로 돌아왔다.

▶달라이 라마가 1950년 11월 열다섯 살에 예정보다 2년 빨리 즉위한 것도 중국 때문이었다. 그 한 달 전 중국군 8만 명이 드리추강을 건너 티베트로 진격했다. 국가적 위기를 맞은 티베트인들은 오랜 섭정을 끝내고 달라이 라마가 지도력을 발휘해 주기를 바랐다. 티베트를 점령한 중국은 "티베트 민족은 조국인 중화인민공화국에 복귀한다"는 '평화협정'을 달라이 라마에게 강요했다.

▶중국 정부와 티베트인 사이에서 샌드위치 신세가 된 달라이 라마의 정치력은 곧 시련에 부닥쳤다. 1956년 캄과 암도 지방에서 티베트 게릴라부대가 조직돼 중국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이기 시작했다. 1959년 게릴라부대가 라싸로 진격해오자 중국이 달라이 라마를 암살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결국 달라이 라마는 히말라야를 넘어 인도로 망명했다. 이를 알게 된 중국군이 티베트 왕궁을 포격하고 군중에게 기관총을 난사하면서 달라이 라마와 중국은 완전히 갈라섰다.

▶중국 정부가 25일 달라이 라마와 대화를 갖겠다고 밝혔다. "중국을 분열시키는 폭력 조장과 베이징올림픽 방해 활동을 중단하면 달라이 라마의 대표단을 만나겠다"고 했다. 부시 미국 대통령과 유럽 지도자들의 거듭된 대화 요구를 계속 거부하다가는 넉 달 앞으로 다가온 베이징올림픽이 지장을 받을지도 모른다고 걱정한 때문일 것이다. 달라이 라마 측은 즉각 환영했다.

▶달라이 라마와 중국은 이따금씩 물밑 대화를 가져왔다. 2002년 9월엔 달라이 라마의 밀사가 베이징을 방문한 뒤 중국과 스위스 등에서 회담을 열었다. 그러나 달라이 라마의 '고도의 자치' 요구를 중국이 "티베트엔 '일국양제(一國兩制)'가 안 된다"며 완강히 거부해 진전이 없었다. 달라이 라마는 티베트 독립주의자들로부터 비난을 받으면서도 '중도(中道)'를 내걸고 있다. 중국은 그런 달라이 라마의 입지를 열어주는 편이 자신에게도 이롭다는 것을 왜 깨닫지 못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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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선지 악순환의 연속...지난 3월의 라싸 피비린내 나는 슬픔은...중국이 부디 알아주면 좋으려면 그렇지않다면 더이상 무력으로 통제하지 않길만을 조용히 기도드린답니다...휴_()_ 2008-08-15 오후 12:51:57 덧글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