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이라마 가르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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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14TH DALAL LAMA OF TIBET

달라이라마 가르침 14대 달라이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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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이라마 친견기

화이트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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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나는 달라이 라마를 관세음보살의 화신이라고 믿었던가?
아니다. 나는 결코 그렇게 믿지 않았다. 티베트인들의 역사와 종교 속에서 피어난 하나의 상징으로서 존중할 뿐이었다.
 그러나 다름살라의 왕궁 앞에 앉아서 달라이라마를 기다릴 때, 내 가슴은 다소 설레고 있었다. 첫 인도 여행이었고, 여전히 피가 뜨거운 삼십대 초반이었기 때문이다.

 주변의 티베트 사람들은 열을 지어 앉아 염주나 마니차를 돌리며 나지막하게 옴 마니 팟메 훔을 암송하고 있었고 내 옆에 선 호주 여인도 옴 마니 팟메 훔을 암송하고 있었다. 차분한 가운데서도 열기가 가득 찬 묘한 분위기였다.
 이윽고 왕궁 문이 열리자 도열해 있던 사람들은 모두 일어섰다. 자동소총을 멘 인도 경찰이 앞장섰고 몇 사람이 뒤를 따르고 있었다. 나는 긴장한 채 달라이 라마를 찾았지만 그는 보이지 않았다.
 구부정한 노인네 같은 그는 사람들 속에 파묻혀 있었던 것이다. 굵은 테안경을 끼고 둥근 얼굴에 가득히 미소를 띤 온화한 모습이었다.
 순식간에 내 앞을 스쳐 지나간 그는 법당을 향해 걸어갔다. 도열한 티베트 사람들은 합장을 한 채 머리를 깊이 숙여 인사했고 달라이 라마는 겸손하게 인사를 받았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침묵, 깊은 침묵만이 주변을 강하게 맴돌고 있었다.
 이윽고 그가 멀리 뒷모습을 남기며 법당 안으로 사라졌을 때, 옆에 있던 호주 여인은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그가 지나가는 동안 깊은 침묵 속에서 형언할 수 없는 슬픔이 파도처럼 밀려왔던 것을 나도 기억한다.

 그날 그의 법문이 있었다. 그는 강독을 하듯 불경을 툭툭 끊어지는 티베트어로 빠르게 읽고 나서 길게 설명을 했다. 나는 갖고 간 워크맨을 통해 라디오를 들었다. 티베트 임시정부에서는 다름살라를 찾아온 외국인들을 위해 영어 통역 방송을 하고 있었다.

 “행복은 돈이나 섹스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밖에 의존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이 변하면 우리는 고통을 받게 됩니다. 진정한 행복은 깊은 침묵에 잠겨 내면을 들여다볼 때 느낄 수 있습니다......”

 많은 불교 가르침이 이어졌지만 나는 이내 헤드폰을 내려놓고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힌 채 단상에 앉은 그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말을 떠나는 순간, 그의 존재가 나의 가슴으로 더 깊숙이 걸어들어왔다.
 그는 촌에서 사람들을 모아놓고 구수하게 옛날 얘기를 하는 인자한 할아버지 같았다. 흔들흔들 몸을 흔들며 불경을 읽다가 머리를 긁적긁적 긁는가 하면, 가사 속에 손을 집어넣어 등을 긁기도 했다. 또 무슨 일 때문인지 갑자기 킥킥거리고 웃다가 입을 꾹 다물고 얼굴이 붉어진 채 간신히 웃음을 참기도 했다. 종종 싱글싱글 웃어가며 손자 손녀 바라보듯 사람들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그 소탈하고 자유자재한 모습.
 밑에서 다른 노스님들은 등을 꼿꼿이 하고 고개를 빳빳이 세운 채 무게를 잡고 앉아 있었는데, 그럴수록 초라하게 보이고 있었다.
 달라이 라마는 그들 사이에 우뚝 선 거목이었다. 풍상에 시달리느라 가지가 굽고 뒤틀렸으나 끊임없이 새싹을 돋아내는 거목. 
 엉뚱하게도 나는 달라이 라마를 보며 노자가 한 말을 떠올렸다. 
 진정으로 지혜로운 사람은 오히려 어리석고 허술해 보인다는 그 말.
바로 달라이 라마가 그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텐진 갸초

 그는 1935년 5월 5일 동북 티베트 암도 지방의 조그만 마을인 타크처에서 출생했다. 그리고 여섯 살의 나이인 1940년 달라이 라마 14대로 즉위했다. 그로부터 19년 후인 1959년 3월 엄동설한의 험준한 히말라야 산맥을 넘어 인도로 망명한다. 그의 나이 스물 다섯 때였다. 왕궁 앞에서 티베트 민중들과 중공군의 대규모 격돌이 시시각각 다가오는 것을 바라보다 결국 그것을 막기 위해 자신의 궁을 몰래 떠나고 만 것이다. 그가 궁에 있는 줄 알았던 중공군은 그를 죽이기 위해 무자비한 폭격을 가했고.......

 그는 어릴 때부터 그렇게 고통을 겪었다. 인도 망명지에 와서도 알게 모르게 많은 서러움과 고통을 겪었다. 평생이 고통스런 삶이었다. 그가 토로했듯이, 자신이 그 지위를 내놓고 티베트 민중을 살릴 수만 있다면 법왕이고 뭐고 다 포기하고 싶어했다.

 그러나 그는 이미 그가 아니었다. 티베트 사람들의 살아 있는 부처요, 지도자였다. 그는 티베트가 독립을 하게 되는 날, 자신의 의무 또한 끝나는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날까지 그는 티베트인의 법왕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제 그 모든 고통을 감내하고, 고통 속에서 의무를 실천하며 소탈하게 웃고 있는 달라이 라마.

 울렁거리는 가슴을 지그시 누르며 나는 달라이 라마를 바라보았다. 그때, 하늘로부터 쏜살같이 내려온 한마디가 내 머리 위에 날카롭게 꽂혔다.

 고통.
 그렇다. 고통이야말로 사람을 성스럽고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리라. 고통 속에서 피어난 슬픔과 사랑과 달관이 결국 우리를 구원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다르마(법, 의무, 덕, 하늘의 이치).
 묵묵히 고통 속에서 다르마를 실천하는 사람이야말로 위대한 사람일 것이다.
 그런 사람을 관세음보살의 화신이라 부른다면, 달라이 라마 14대야말로 관세음보살의 화신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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